가수란 꿈을 안고 태국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에 왔던 17살 소녀는 어느덧 데뷔 8년 차 K팝 가수가 되어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여자)아이들의 메인보컬 민니 얘기다. 특유의 몽환적인 목소리로 (여자)아이들 노래의 중심을 잡아줬던 민니는 재계약이란 전환점을 맞으며 솔로 가수로서의 역량을 대중 앞에 꺼내 놓았다.
민니는 지난 21일 첫 번째 미니 앨범 ‘허’를 공개했다. (여자)아이들 멤버 중에선 네 번째 솔로 데뷔다. 그간 민니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조금씩 드러내 왔었다. 그룹 앨범의 전반적인 프로듀싱을 맡는 소연만큼이나 꾸준히 수록곡을 만들어 앨범에 실었고, 다양한 드라마 OST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의 멤버로서 존재감이 강했던 탓에 솔로 가수로서의 면모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랬던 민니가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실력을 솔로 앨범 ‘허’에 7곡의 자작곡으로 압축해 들고나왔다.
앨범 발매를 하루 앞둔 지난 20일 서울 성동구 큐브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민니는 긴장과 설렘, 여유가 모두 담긴 얼굴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민니에게 가지고 있는 역량에 비해 솔로 앨범이 늦게 나온 것 같다고 운을 띄웠다. 그러자 민니는 “천천히 준비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천천히 하다 보니 이제야 솔로 앨범이 나오게 됐다”며 “솔로 얘기는 2년 전부터 나와서 틈틈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추울 때 노래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이 됐다”고 답했다. 추운 계절에 앨범이 나와야 했던 이유는 꼭 넣고 싶었던 노래인 6번 트랙 ‘익숙해’가 겨울과 잘 어울리는 곡이어서라고 했다.
민니는 앨범에 담긴 7곡 모두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뮤즈’라는 앨범의 메시지를 음악 곳곳에 녹여냈다. 민니는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이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 등 저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봤다”며 “이번 앨범은 민니의 다이어리”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처럼 앨범에 담긴 곡들은 민니의 다양한 시간을 담고 있었다. 4~5년 전 만들어둔 노래(‘밸런타인스 드림’, ‘옵세션’, ‘익숙해’)부터 최근에 쓴 곡들까지, 노래를 만들 때의 민니의 생각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민니의 다이어리’라고 불릴 만했다.
이 가운데서도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자신의 다양한 자아를 담아낸 노래가 타이틀곡 ‘허’다. (여자)아이들 활동을 하면서 보여줬던 카리스마 넘치고 센 모습뿐 아니라 감성적이거나 섹시하고, 때론 귀엽기도 한 다양한 민니의 모습을 담았다. 이런 모습을 솔로 앨범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민니는 “저는 굉장히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는 마음이 강하다”며 “(여자)아이들의 민니도 있지만, 솔로 가수 민니도 멋있고 다양한 음악을 하는 가수라는 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의지를 보여주듯 앨범 ‘허’에는 다양한 장르의 곡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부른 노래들이 담겼다. 민니는 “각 곡의 장르와 사용하는 목소리의 톤을 조금씩 다르게 했다. 아주 낮은 저음부터 고음, 얇은 목소리부터 두꺼운 목소리까지, 전곡을 혼자 부르는 것처럼 들리지 않길 바라서 다양한 테크닉도 썼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자)아이들로서 해외 투어를 도는 등 바쁜 와중에도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쉬지 않고 곡 작업을 하고 녹음하길 반복했다.
앨범엔 영어로 쓰인 곡과 한국어로 쓰인 곡이 섞여 있다. 민니는 대화가 막힘 없이 가능할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했다. 한국어 가사를 어떻게 썼는지 묻자 그는 “가사를 쓸 때 주변의 도움을 받긴 한다. 하지만 최대한 직접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검색도 하고, 다른 아티스트의 가사도 많이 보면서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며 배운다”면서도 “여전히 한국어 가사를 쓰는 건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한국어 가사로 쓰인 수록곡은 (표현들이)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해도 의미는 잘 전달될 것”이라며 웃었다.
‘톰보이’, ‘퀸카’,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등의 히트곡을 잇따라 내놓은 (여자)아이들은 지난해 데뷔 후 처음으로 대중음악 시상식 ‘멜론뮤직어워드’(MMA)에서 대상 가운데 하나인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했다. 당시 수상 소감을 발표하면서 멤버들은 소속사인 큐브엔터테인먼트와의 재계약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여자)아이들로서 제2막을 시작하는 순간인 만큼 지난 7년을 돌아본 소회가 어떤지 물었다. 민니는 “(지난 7년은) 제게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멤버들과 오랜 시간 활동하며 많이 성장했고, 많은 경험도 하면서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지, 잘하고 못하는 게 뭔지, 제 모습을 많이 찾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7년을 통해 깨달은 민니의 모습을 이번 앨범에 담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7년 전 K팝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딜 때 민니는 지금 같은 모습을 상상했을까. 그는 “(데뷔할 때 생각한 것보다) 상상 이상인 것 같다. 지금처럼 오랫동안 성장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솔로 앨범을 내는 것도 상상은 했었지만 그게 현실이 될 줄 몰랐다”며 “앞으로 7년 뒤의 제 모습을 저도 기대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성장해있지 않을까 싶다. 솔로 가수로도, 그룹으로도 조금 더 다양하고 멋진 음악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여자)아이들에서 한 발 더 나가 솔로 가수로서의 첫발을 뗀 민니가 그리는 솔로 가수로서의 모습은 어떤 그림일지 궁금했다. 롤모델이 있는지 묻자 민니는 “존경하는 아티스트가 정말 많다”면서도 예상외의 답을 내놨다.
“‘허’에서의 제 모습이 제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모습 같아요. 끊임없이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 하는 걸 상상하면서 그걸 현실로 만들려고 하는 편인데, 지금으로선 그게 ‘허’에 드러난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롤모델을 그렸는데 (다양한 자아를 가진) ‘허’가 나왔거든요. 앞으로 이런 모습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K팝 가수가 되는 꿈을 품는 청소년들이 전 세계에서 생겨나고 있다. 한국에서 데뷔하는 K팝 그룹 구성원들의 출신 국가가 다양해지는 것도 그 방증이다.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민니가 지금의 위치에 있기까지는 큰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 비결을 묻는 말에 민니는 이렇게 답했다.
“제 모토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말자’다. 가수가 꿈이라 한국까지 왔으니, 후회하지 않게 어떤 기회라도 오면 무조건 최선을 다했다. 시도하는 것도 두려워하기보다 즐겼다. 저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이나 영감을 줄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 저와 같은 꿈을 가진 많은 친구가 제 작품이나 노래를 보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쉽지만은 않지만, 진짜 최선을 다하면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고 싶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