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믿는 자여, 어이할꼬

입력 2025-01-25 00:38

한국교회 신자들이 공통으로 부르는 ‘21세기 새찬송가’ 515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는 작사자와 작곡가 모두 한국인이다. 이 찬송가가 처음 나온 것은 6·25전쟁 중인 1952년이었다. 가사는 당시 상황을 반영한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이 할꼬.’(1절)

작사자 석진영(1926~2002)씨는 서울대 사대(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울산으로 피란해 울산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그때 작사가 박재훈 목사를 만나 찬송을 만들었다. 총 4절까지 이어지는 이 찬송 3, 4절은 절망 속에서도 예수만 바라보자는 내용이다. 전쟁 중 낙심해 있는 기독교인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전반부 가사만 보자면 오늘의 현실과도 다르지 않다.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의 2절 가사는 오늘의 혼탁한 사회와 교회상을 보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오늘의 교회는 12·3 비상계엄 이후 하나의 정치 집단화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탄핵 찬반에 따라 둘로 갈라져 있다. 여기에 부정선거와 중국인 개입 등 온갖 음모론에 편승하고 있다.

목사면 목사, 선교사면 선교사, 교인이면 교인, 심지어 가족들 카톡방까지 양쪽으로 갈려 소위 ‘폭파’ 직전에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해도 모자랄 판에 목회자들이 대놓고 설교나 SNS에서 한쪽 편을 들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행위는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이다. 일반 교인도 아니고 교회의 대표 격인 목사가 특정 편을 지지하는 순간 교인들은 둘로 나뉜다. 만약 이대로 갈등과 분열이 지속된다면 교인들은 자신이 속한 교회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다간 정치적 입장에 따른 정치교회들이 생겨날 판이다. 이미 몇몇 교회는 이 같은 현상을 보이고 있다. 단언컨대 이것은 비정상이자 반기독교다. 이데올로기를 하나님 대신 믿고 있다고 봐야 한다. 명백한 우상숭배다.

한국교회 역사 속에서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갈등했던 시기가 있었다. 1920~1930년대 한국 사회에 몰아친 자유주의 신학과 사회주의는 교회를 갈랐다. 해방 정국과 이어진 전쟁으로 인한 민족 갈등, 북한 공산정권에 의한 교회의 핍박과 그 피해는 이후 한국교회 역사를 규정했다. 그래서일까. 역사가들은 오늘의 이데올로기 갈등에 해법은 없어 보인다는 비관론을 내놓는다. 한 교회사가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분단 상황 속에서 이데올로기 갈등을 해결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교회가 매우 쇠퇴해지거나 약해지면 달라질 수 있다. 남북통일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교회 역사에서도 비슷한 궤적을 보인다. 1940~1950년대 분리주의(근본주의)가 극심하고 매카시즘이 창궐할 때 칼 헨리와 찰스 풀러, 빌리 그레이엄 등은 이른바 신복음주의를 선언하며 분리주의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이후 제리 폴웰 등 정치적 근본주의 목회자들이 등장하고 그 여파가 이어지면서 미국교회는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혼돈의 시기에 한국교회는 어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른들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기독교의 본질에 충실하려고 했었다. 2005년 1월 3일자 국민일보는 당시 진보 보수의 원로인 강원용·조용기 목사의 신년대담을 게재했다. 그분들의 말을 되새기는 것으로 ‘믿는 자여 어이할꼬’의 답으로 삼고 싶다.

“완전히 의롭고 선하고 흠 없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 속에 악이 있고 악 속에 선이 있습니다. 서로 싸우지 말고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한다면 상대방의 옳은 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강 목사) “서로 이해하고 화합한다면 보혁 갈등은 사라질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새의 양날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사회 참여는 문제가 없지만 교회가 끼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조 목사)

신상목 종교국 부국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