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나의 반려 사물

입력 2025-01-24 00:33

얼마 전 독서대를 선물 받았다. 두께가 새끼손가락 한마디만 하고, 너비가 두 뼘 남짓한 독서대였다. 선물을 보낸 이가 동봉한 엽서에 짧은 편지가 적혀 있었다. “직접 만들 재주는 없어서 목수 친구랑 머리를 맞대고 만든 독서대입니다. 부디 책상 한켠에 함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독서대에 내 시의 한 구절도 음각돼 있었다.

어떤 선물은 쓸모를 다하고 소모된다. 그것도 선물의 충분한 운명이자 보람이다. 또 어떤 선물은 다른 이에게 맞춤인 듯해 나눔을 통해 새 주인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선물이라면 평생 곁에 두는 ‘반려 사물’이 되지 않겠는가.

점자를 읽듯 손끝으로 독서대를 만져본다. 균일하게 글자를 파기 위해 힘을 조절했을 목수의 손을 떠올려 본다. 누름쇠를 나사로 조이거나, 표면을 매끄럽게 문지르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종류는 오동나무일까. 여러 개의 나뭇조각을 접합하지 않고,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통원목이다.

세로로 켠 나뭇결은 두 가지 무늬로 나뉜다. 상부는 물결무늬다. 파도가 겹겹의 주름을 밀어내며 넓게 퍼져 나가는 모양이다. 하부는 수평선처럼 잔잔한 평행무늬다. 나는 독서대 바깥으로 길게 선을 내긋는다. 새삼 신비롭다. 나무가 한 살 먹을 때마다, 몸 안에 동그란 고리를 새긴다는 사실이. 아울러 어릴 적에 아버지가 알려줬던 말도 기억난다. 나무가 어릴 때는 키가 빨리 자라 나이테가 넓거나 연하고, 나무가 늙거나 가뭄이 들면 나이테도 좁아진다는 말.

옹이는 가지가 있던 자리의 증거다. 뒷면이 옹이진 나무는 어떤 시간을 살았을까. 보랏빛 오동꽃이 봄밤을 환하게 밝히기도 했을까. 벌레와 버섯이 간지럽게 깃들고, 딱따구리도 다녀갔을까. 가을이면 볼이 불룩한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겨놓기도 했으려나. 폭서와 혹한을 묵묵히 견뎌낸 나무. 떡잎에서 시작해 한 아름 넘는 나무가 되기까지, 그 인고의 시간을 책상에 올려두고 바라본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