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휴대폰엔 서울과 미국 애틀랜타, 두 곳의 시간이 설정돼 있다. 현재 시각 서울은 23일 오전 5시46분, 애틀랜타는 22일 오후 3시46분. 나와 애틀랜타에 있는 이들은 같은 순간을 살고 있지만 나는 오늘을, 그들은 내가 이미 지나쳐온 어제에 있다.
1년 정도 애틀랜타 인근에 살다 지난달 한국에 왔다. 아직 미국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살던 집 관리인은 내가 떠난 집을 살핀 뒤 수리할 게 있으면 보증금에서 차감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얼마나 가져가려고 그러는지 방금 메일을 보내놓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중이다. 보증금이 들어오면 달러를 환전하고 계좌를 닫을 계획이다. 미국에서 쓰던 신용카드를 정지하는 일도 남았다.
이런 일들을 처리하려면 부동산 관리인, 은행, 카드사에 전화나 메일로 연락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서울과 애틀랜타 사이에 있는 13시간의 시차가 꽤 신경 쓰인다. 두 도시는 낮과 밤이 바뀌어 있다. 내가 밤일 때 그들은 낮이다. 그들이 낮이면 나는 캄캄한 밤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지난 20일(현지시간)에 있었다. 그러나 한국 시간으로는 하루가 지난 21일 새벽 2시였다. 관련 기사를 까먹지 않고 쓰려고 스케줄 정리를 하는데 시차는 작은 혼란을 가져왔다. 1873년 쥘 베른이 발표한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에는 지구를 한 바퀴 돈 주인공이 시차 때문에 정해진 시간보다 하루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내기에 질 뻔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비슷한 꼴이 날 뻔했다. 시차는 비즈니스를 방해하기도 한다. 미국의 한 벤처캐피털(VC)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미국 투자자들은 외국보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을 선호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들은 속도를 중시하는데 소통에 시차가 있으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일을 지체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국의 부동산 관리인, 은행과 카드사 직원은 언제나 느긋했다. 성격이 급한 나는 그들의 일처리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늘 새벽에 연락했다. 심지어 사랑마저도 시차의 괴롭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연인이 외국에 있는 ‘롱디’(Long Distance·장거리 연애) 커플은 늘 이별에 직면해 있다. 거리 차이로 인해 만나기 힘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엇갈린 시간 차이가 연인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시간의 틈은 기어이 감정에 균열을 만들기 마련이다.
구구절절 시차의 불편함에 대해 얘기하는 이유는 요즘 이상한 착각이 들어서다. 서울과 애틀랜타의 시차는 분명 13시간인데 지난달 한국에 들어온 뒤 한 30년의 시차가 생긴 것 같다는 착각. 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다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탄핵된 대통령의 권한대행이 다시 탄핵돼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등장하다니. 2025년을 살고 있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착각. 대한민국의 시계가 적어도 30년은 뒤로 돌아간 것 같다. 법원이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이에 반발한 폭도가 법원에 집단 난입해 난동을 부린 장면에서 ‘30년의 시차’가 착각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의 삶을 살기 위해선 서둘러 시차 적응을 해야 할 텐데 30년의 시차는 도무지 적응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애틀랜타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한 건 시계를 13시간 앞으로 돌리는 일이었다. 이미 보낸 13시간을 또 다시 보낸 셈이다. 반대로 애틀랜타에서 서울에 온 날 나는 시계를 13시간 미래로 돌렸다. 내가 겪지 않은 13시간이 사라졌다. 시간에 틈이 생겼을 때 우리가 해야 할 건 잠시 멈춰 서서 시간을 맞추는 일이다.
이용상 산업2부 차장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