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이른바 ‘비상입법기구 쪽지’를 국무위원들에게 직접 건넸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 22일 국회 청문회에 추가로 등장했다. 해당 쪽지를 전달한 적 없다는 윤 대통령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비상입법기구 쪽지 이슈는 계엄의 위헌성 여부를 다투고 있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열린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산 쪽지를 건네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합동참모본부에 있었다”며 “(지난해) 12월 3일 저녁 10시20분 안찬명 합참 작전부장이 합참 엘리베이터에서 김 전 장관을 만났다고 한다. 11시10분까지 합참 전투통제실에 김 전 장관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최 장관이 예산 쪽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은 10시43분으로 그 시간에 김 전 장관은 국무위원 대기실에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 장관이 대통령으로부터 쪽지를 바로 받았음이 확실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헌재 탄핵심판 사건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문제의 쪽지와 관련해 “저는 준 적도 없고, 이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국방부 장관밖에 없는데 국방장관이 구속돼 있어서 구체적으로 확인을 못했다”고 항변했는데, 이와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본인이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쪽지를 받은 것이 맞느냐’는 백혜련 민주당 의원 질의에 “맞다”고 확인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굉장히 충격적인 상황이어서 전체적인 것들이 기억하기 굉장히 어렵다”고 답했다.
청문회에서는 계엄 당시 윤 대통령의 주요 정치인 체포 지시도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계엄 당일 오후 10시53분쯤 윤 대통령과 통화했다”며 “강한 어투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이번에 다 잡아들여서 싹 다 정리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 지시가) 국내에 장기 암약하던 간첩단 사건을 적발했나 보다. 그래서 긴급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해 국정원에까지 지원을 요청한 것이라고 추정했다”고 주장했다.
홍 전 차장은 또 “(계엄 이전) 대통령을 좋아했고, 시키는 일을 다 하고 싶었다”며 “그런데 그 (정치인 체포) 명단을 보니까 그거는 안 되겠더라. 그런 게 매일매일 일어나는 나라가 하나 있다. 평양. 그런 일을 매일매일 하는 기관은 어디? 북한 보위부”라고 말했다.
특히 홍 전 차장은 비상계엄 당일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정치인 체포 지시가 내려졌다는 취지로 보고했으며 조 원장은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고 했을 뿐 관련된 보고를 받기 거부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밤 11시6분에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통화하고 11시30분에 원장님께서 지시하셔서 집무실에서 긴급 정무직 회의가 열리는데 방첩사한테 받은 내용을 어떻게 말씀 안 드릴 수 있나”라고 덧붙했다. 다만 조 원장은 이에 대해 “저는 못 들었다. 12월 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는 홍 전 차장이 ‘이러한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은 나밖에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의 2차 비상계엄 선포 가능성을 국회에 경고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홍 전 차장은 개인적 추정임을 전제하면서도 “정보 관료로서 오랜 경험상 최근 상황을 판단해보니 2차 계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2차 군사 개입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정보위원장께 보고 드린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홍 전 차장은 계엄 해제 이후로도 윤 대통령의 의지가 꺾이지 않았고, 김 전 장관 후임으로 윤석열캠프 출신인 최병혁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지명된 점을 주된 근거로 제시했다.
국조특위는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한 윤 대통령, 김 전 장관 등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출석했지만, 증인 선서 자체를 거부했고, 의원 질의에도 “증언하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