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명예훼손 논란이 일었던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사진) 세종대학교 명예교수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총 9000만원 배상 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이 9년 만에 뒤집혔다. 박 교수가 관련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점 등이 근거가 됐다. 학문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고법 민사12-1부(재판장 장석조)는 22일 고(故) 이옥선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9명이 박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에서 1심 일부승소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박 교수 명예훼손 혐의를 무죄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 등을 근거로 이같이 판결했다.
박 교수는 지난 2013년 8월 출간한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자발적 매춘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고 기술해 논란을 빚었다. 이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가족들은 2014년 박 교수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검찰은 2015년 11월 박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민사소송 1심은 2016년 1월 “박 교수가 피해자 1명당 1000만원씩 총 9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박 교수가 항소했지만 2심은 박 교수의 형사재판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기일을 추후 지정했다. 박 교수는 형사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017년 10월 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2023년 10월 “해당 표현이 사실 적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 취지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학문적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약 8년간 중단됐던 민사 재판은 대법원 판결 후 2023년 11월 재개됐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당 저서는 학문적·객관적 서술”이라며 “박 교수가 학문 분야에서 통상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부정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의견 표명에 불과해도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원고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다소 감정적 영향을 받았더라도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를 넘을 정도로 인격권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대법원이 파기한 형사 재판은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검찰이 재상고하지 않아 지난해 4월 확정됐다.
한웅희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