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화석연료 확대 등 대대적인 에너지 정책 전환을 선언하며 국내 에너지 산업도 변화의 소용돌이에 직면했다.
먼저 원유·천연가스(LNG) 시추를 늘리고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트럼프 2기의 방침에 따라 미국산 원유(WTI)와 천연가스 수입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에너지 수입처를 미국으로 전환하면 대미 무역수지 흑자 폭이 줄지만 미국의 관세 압력에 대응할 여지는 더 넓어진다.
미국의 최대 5000억 달러 규모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방침도 전력망·원전 등 국내 관련 산업에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22일 “트럼프는 철저히 자국의 이익 관점에서 행동하는 인물”이라며 “우리 정부와 기업도 얻을 건 얻고 줄 건 주는 실리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미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앞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산 에너지가 가격 측면에서 중동산보다 유리해 수입 확대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성택 산업부 1차관도 지난 8일 새해 업무방향 브리핑에서 “트럼프 1기 때처럼 미국산 에너지 수입 효과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미국산 원유는 총 2151만t으로 사우디아라비아(4789만t)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미국산 원유 수입 비중도 2020년 10.2%에서 지난해 15.7%로 급증했다. 천연가스 수입국 순위에서도 미국은 호주, 카타르, 말레이시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자 LNG 수출국이고 한국은 세계 3위 LNG 수입국”이라며 “미국은 생산 물량을 공급하고, 우리는 통상 교섭의 여지를 확대하는 윈윈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2기의 AI 인프라 투자 방침으로 미국 내 발전·전력망 확충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 공급과 안정적 송배전망이 필수적이다. 미국 오라클과 오픈AI, 일본 소프트뱅크 합작사인 ‘스타게이트’의 AI 인프라 투자에도 천연가스·원전 등 발전 시설 및 전력망 확충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더그 버검 신임 내무부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 상원 청문회에서 “전력 생산을 늘리고 송전망을 확대하지 않으면 중국과의 AI 군비 경쟁에서 패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국내 원전·변압기 등 관련 산업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유 교수는 “미국 내 전력 공급 확대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마존 등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일부가 국내로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박유안 KB증권 연구원은 “공급 안정성이 높은 원전이 AI 데이터센터의 기저 전력 역할로 주목받을 수 있다”고 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이날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미국 신(新)정부 출범으로 우리 경제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며 “미 신정부 정책이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산업과 수출 어려움이 심화할 우려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발표한 에너지 정책 변화, 전기차 우대조치 철폐 등이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기민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