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은 핵보유국(nuclear power)’ 발언을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평가하면서도 “비핵화 협상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로 받아들일 경우 비핵화 대응 공조가 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버티면 통한다’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도 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21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에 “트럼프가 국제관계에서 성공을 원하고 있는 만큼 북한과의 협상을 추진할 의지가 분명하고, 이를 위해 전략적인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하려는 의도로 발언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도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트럼프 발언은 북한에 비공식적으로 외교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 역시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과 대화를 재개해야겠다는 전략적이고 외교적인 목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전문가들은 트럼프 발언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포기하고 핵 군축 협상으로 기조를 수정하려는 신호로 여겨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묵인할 것으로 받아들이면 국제사회가 유지해 온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다”며 “‘북한처럼 버티면서 핵을 보유하면 인정받는다’는 위험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핵 군축 같은 카드를 미국이 절대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트럼프 행정부가 아직 인도·태평양 정책 검토를 수행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관련 발언의 진의를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미국이 비핵화를 포기한다면 다른 핵보유국들에도 잘못된 용인 신호를 보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스타일을 경험한 미국 전직 관료들도 트럼프 발언의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핵 개발에 몰두해 온 북한의 현실을 단순히 표현한 것일 뿐 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6자회담 차석대표는 “북한과의 무기 군축 협상을 위해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nuclear weapons state)’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다”며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는 미국의 목표는 변함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파괴무기 정책조정관도 “트럼프는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드니 사일러 전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 담당 국가정보분석관은 “어떤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미국은 북핵 문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민지 이택현 박준상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