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기업에 차별적으로 과세한 국가 소속 법인과 개인의 미국 내 세율을 두 배로 높이겠다고 위협했다. 통상·무역 장벽을 쌓는 관세 압박에 그치지 않고 외국 정부의 조세 제도에도 ‘미국 우선주의’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발 ‘세금전쟁’이 세계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 각서에 미국법전 제891조가 언급됐다”며 “90년 전 수립된 이 조항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과 외국 법인에 대해 징벌적으로 과세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조세 제도에 대한 국제적 대립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첫날인 20일 밤 공개한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 각서에는 ‘891조에 따라 외국 정부가 미국 기업·국민에 대해 차별적 세금을 부과하는지 여부를 재무·상무장관, 미국무역대표부(USTR)와 협의해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891조는 대통령이 ‘외국 정부의 차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면 의회의 승인 없이 세율을 인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회계법인 에드베일리의 앨릭스 파커 세법 담당 이사는 FT에 “891조는 가장 극단적인 선택지”라며 “트럼프가 임기 초반부터 발동하겠다고 위협한 점에서 흥미롭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글로벌 최저한세’의 미국 내 도입을 철회하는 내용의 각서도 작성했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지난해 OCED 회원국 사이에서 합의된 협정이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도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디지털세 부과 움직임을 놓고 충돌한 바 있다.
트럼프는 해당 각서에서 ‘글로벌 최저한세의 효력이 미국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주권과 경쟁력을 회복한다’며 보호 조치로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60일 안에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대해 FT는 “미국이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영국·한국·일본·캐나다를 포함한 OECD 협정 서명국들을 상대로 국제 조세 규정에 광범위하게 도전할 의향이 있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번 지시를 두고 ‘관세전쟁’을 넘어 ‘세금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영국 상무부 관리 출신인 앨리 레니슨 SEC뉴게이트 부책임자는 “트럼프가 다른 나라의 차별적 관행에 대응한 경제전쟁의 전선을 넓히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에서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마티어스 코먼 OECD 사무총장은 “미국 대표들이 국제적 조세 합의 내용을 놓고 여러 측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해 왔다”며 “이중과세를 피하고 조세 기반을 보호하는 국제 협력과 지원을 위해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와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