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국회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에 제출한 자료에 북파공작원(HID)·블랙요원 등 국군정보사령부 요원들의 성명·계급·소속 부대, 총기·탄약 관리 현황 등 군사 비밀이 다수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비상계엄 사태 규명 과정에서 국가안보를 해칠 수 있는 기밀이 대거 외부로 노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이번 사태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적 합동타격계획 훈련 일지’ 등의 자료 제출 요구도 빈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사는 대북 및 해외 정보수집과 공작 등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군 정보기관으로, 소속 요원들은 통상 신분과 소속을 숨긴 채 활동한다. 편제나 활동 내용 등은 모두 군사 기밀로 분류된다.
국민일보가 22일 입수한 ‘국정조사 요구자료’에는 기밀로 분류되는 민감한 군사정보들이 별도 가림 처리 없이 다수 포함됐다. 이 자료는 국회 국조특위 위원들의 요청에 따라 군 당국이 제출한 답변 및 보충자료다.
국조특위 소속 야당 의원 2명은 정보사에 각각 총기·탄약 관련 불출 일지를 요청했고, 정보사는 이에 따라 ‘총기수불대장’을 제출했다. 총기수불대장은 부대 내 총기의 출납을 관리하기 위한 장부로 ‘누가 누구에게 언제 어떤 총기를 불출했는지’를 수기로 기록하고 지휘관 서명을 받게 돼 있다.
A의원에게 제출된 자료에는 속초 HID부대와 그 예하 부대의 명칭이 공개됐다. 부대원 신상은 가림 처리했다. 그러나 정작 B의원에게 제출된 자료에선 정보사 사령부·중앙신문단·100여단·속초 HID 부대와 예하부대 등 16곳의 총기수불대장이 아무런 조치 없이 공개됐다.
총기수불대장의 전체 분량은 68쪽에 달한다. 정보사 요원의 이름·계급·개인화기 등이 기재돼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제 총기 사용 여부 등 주요 요원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도 포함돼 있다. HID부대 편제나 인원 규모 등도 대략적 추정이 가능하다.
군사기밀보호법에 따르면 이같은 내용은 가상적국에 유리하게 악용될 우려가 있는 군사 사항으로서 2·3급 이상의 군사 비밀에 해당한다.
또 국조특위에 제출된 특전사령부 예하 각 공수부대의 상황일지에는 부대 구성과 각 제대별 총원, 일부 부대원의 성명·계급과 사격훈련 등 평소 일과가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대테러 임무를 수행하는 특전사 직할 707특수임무단 부대운영일지에는 전투용 탄약고와 간이용 탄약고에 보관 중인 탄약 종류와 수량이 비공개 처리 없이 기재 됐고(탄약 일일결산), 707특임단의 각 지역대 별 화기 보유량도 총기 종류만 비공개 처리된 채 적시됐다. 유사시 적진에 침투해 지도부 제거 등 극비 임무를 수행하는 최정예부대의 전력이 노출된 것이다.
앞서 국조특위가 공개한 기관보고 증인 명단에 정보사 요원들의 신상이 노출돼 군 당국이 ‘증인 보호조치 건의’ 공문을 보내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직 정보사 고위직 관계자는 “정보사 일부 지휘관들이 계엄에 가담했다는 것은 선배로서 안타깝고 분명하게 단죄를 받아야 하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기밀은 기밀로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그 부대는, 언론에 알려질 대로 알려졌지만 국내가 아니라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부대”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보사 출신 인사는 “공작원 명단 노출은 요원 개개인의 생사를 노출시키는 것과 같다”며 “진상규명 과정에서도 국가안보 차원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