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화석연료의 부활과 그린뉴딜(친환경 산업 정책)의 종언을 고하면서 정유·석유화학과 신재생에너지 기업 간 희비가 갈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사에서 “치솟는 에너지 가격으로 인플레이션 위기가 발생했다”며 “이것이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이유다. 우리는 시추하고 또 시추할 것”이라고 밝혔다.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를 전면 확대해 궁극적으로는 ‘반값 에너지’ 공약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미국이 석유·천연가스 생산과 수출을 늘리면 에너지 가격 안정에 기여해 관련 업계의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 장기 침체에 빠져 있는 석화 업계는 에틸렌 원료인 나프타를 국내외 정유사에서 구매한 뒤 나프타분해설비(NCC)로 에틸렌을 생산해 판매한다. 나프타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추출되는데,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 나프타 가격도 연동돼 내려가는 구조다. 미국의 시추 확대가 나프타 원가를 낮춰 석화 업계의 수익성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첫날 배럴당 77.6달러에서 22일 오후 4시 기준 75.34달러로 떨어졌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공급이 늘어나서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 정유 업계 입장에서는 원유를 낮은 가격으로 도입할 수 있고 운전 비용도 줄일 수 있다”며 “낮아진 유가만큼 소비 저항성이 사라져서 소비가 늘어날 수 있는 만큼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석화 업계는 그린뉴딜 종료 선언으로 인한 수혜도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첫날부터 “불공정하고 일방적인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을 철회한다”며 파리협약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석화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신재생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이 지연되면서 우리로서는 장기 침체를 극복할 기회가 생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고환율과 보호무역 심화, 지정학 리스크 등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신중론도 있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업계는 된서리를 맞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태양광 모듈이나 풍력 발전기가 앞으로 미국에 얼마나 설치될지 생각해보면, 일정 부분 타격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기대를 거는 것은 미국의 중국 견제 강화다. 한화큐셀 관계자는 “중국산 제품의 미국 진출이 제한된다면, 미국에 생산 공장을 보유한 기업에는 호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