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서 한국戰 영웅이 된 ‘레클리스’ 이야기

입력 2025-01-24 00:01
미국에 세워진 레클리스 동상. 미 해병대 1사단 군마였던 레클리스는 6·25 기간 경기도 연천 지역 전투에서 고지를 오르내리며 무거운 포탄을 보급하는 활약을 펼쳐 전쟁 영웅이 됐다. 동양북스 제공

6·25 전쟁의 휴전 협상이 한창이던 1953년 3월, 경기도 연천에서는 미 해병대 1사단과 중공군 사이에 치열한 고지전이 펼쳐졌다. 5일 동안 밤낮없이 진행된 ‘베가스 전초 전투’에서 탄약이 바닥나 병사들이 절망할 때마다 암말 한 마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어김없이 나타났다. 당시 운반한 포탄은 386발, 무게로는 4000㎏이 넘었다. 등에 파편을 맞고, 왼쪽 눈 위가 찢어지면서도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다. 마치 ‘전장의 구세주’와도 같았다. 그의 이름은 미 해병대원 ‘레클리스(Reckless)’였다.


레클리스는 경마장 기수로 활약하던 김혁문이 키우던 경주마로 원래 이름은 ‘아침해’였다. 김혁문은 전쟁통에 지뢰를 밟고 다리를 잃은 누나의 의족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미 해병 1사단 5연대 에릭 패트릭 중위에게 아침해를 250달러에 팔았다. 패트릭 중위의 부대는 75㎜ 포탄을 수천 미터까지 날려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무반동총을 운용했다. 가장 필요한 임무는 포탄을 제때 조달하는 것이었다. 패트릭 중위는 군마(軍馬)를 생각했다. 당시 경마장이 있던 서울 신설동을 뒤져 아침해를 찾아냈다. 아침해는 해병대에 입대해 ‘레클리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무반동총의 별명 ‘레클리스 건’(무모한 총)에서 이름을 따 병사들이 지은 이름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에 도착한 레클리스가 환영식 케이크 커팅을 마치고 첫 케이크 조각을 먹는 장면. 동양북스 제공

건설회사에 근무하다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가 20년간 패션회사를 운영하던 저자는 한국에 돌아와 현재 연천 지질공원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에서 전쟁 영웅으로 칭송되던 레클리스 이야기를 접하고 한국에도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각종 자료를 뒤져서 찾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fac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기자들에 둘러싸인 레클리스. 동양북스 제공

레클리스는 해병대에 배치된 후 트레일러에 오르는 내리는 것부터 철조망 통과, 포격 받을 때 자신을 보호하는 법 등 신병 교육을 받은 뒤 다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장비와 탄약, 수류탄, 보급품, 식량 등을 싣고 전선을 누볐다. 통신 케이블을 나를 때는 해병 10명이 달려들어서 해야 할 일도 신속하게 마무리했다. 전우들도 레클리스를 어엿한 해병대의 일원으로 여겼다. 적의 포격이 시작되면 너나없이 자신의 방탄조끼를 벗어 레클리스의 몸부터 감쌌다. 계급도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상병을 거쳐 하사까지 고속승진을 했다.

해병 전우들과 찍은 기념사진. 동양북스 제공

책은 레클리스의 영웅담뿐만 아니라 말조차도 ‘영웅’으로 대우하는 미국의 문화를 생생히 전한다. 전쟁이 끝나고 레클리스는 미 국방부에서 발행하는 도쿄판 ‘스타스앤드스트라이프스’와 대중지 등에 소개되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레클리스를 미국으로 옮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한 해운회사 사장은 “레클리스가 한국전쟁에서 기여한 공로에 감사하다”며 무료 운송에 나섰다. 1954년 11월 10일 캘리포니아에서는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다. 한 참석자는 “일주일 전 리처드 닉슨 부통령이 방문했을 때보다 카메라 기자가 더 많이 왔다”고 했다. 400여명이 모인 연회장에서는 공식 케이크 커팅식이 열렸다. 해병대 전통에 따라 첫 번째 케이크 조각은 가장 명예로운 해병에게 주어진다. 주인공은 레클리스였다. 레클리스의 소속 연대장이었던 앤드류 기어 대령은 해병대 사령관에게 레클리스의 기본적인 관리와 복지, 미디어 노출, 그리고 번식에 관한 내용까지 빼곡히 적은 장문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1968년 레클리스는 울타리를 넘다 크게 다쳐 스무 살의 나이에 안락사됐다. 97년 미국 잡지 라이프는 ‘영웅들의 전당’이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게재됐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인물과 함께 당당히 레클리스 하사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곳곳에 기념관과 동상이 세워졌다. 현재 한국에 기념물을 세우기 위한 모금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