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상황은 일상생활 패턴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또 가져올 것이다. 특히 지난날 신앙생활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매주 교회 예배에 참석해야만 하는지, 온라인 예배도 성경적인지 혹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통로나 도구로 교회를 통해서만 일하신다는 전통이 계승돼야 하는지 등 성경의 확인이 절실한 때가 된 듯하다.
먼저 교회의 근본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교회는 지금까지 다음 네 가지를 지켜왔다. 첫째, 함께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 둘째 성경을 열심히 그리고 정확히 배우는 교육, 셋째 영혼 구원하는 국내 전도와 선교, 마지막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회봉사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교회의 사명은 집단으로 힘쓰는 것이 개인적인 행동보다 더 많은 열매가 있다. 흔히 “나보다 우리는 강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또 21세기 현실은 “종교는 곧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팽배해지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던 세대는 과학, 즉 이성과 증거를 모든 진리의 기초로 여겨 입증 가능한 것만 믿어야 한다는 세속주의 성격을 띤다. 그래서 종교는 입증할 수 없으니 믿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입증 불가능한 내용을 믿으며, 그중 어떤 것을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고 죽기도 하는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울러 과학과 경험적 증거만이 실재를 이해하는 확실한 길이라는 주장에도 믿음으로만 알 수 있는 우주관이 전제돼 있다.
현실은 기도 없이 편하게 신앙생활만 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집 문만 나서면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상의 파도는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대의 아들들(불신자들)이 자기 시대에서는 빛의 아들들(성도들)보다 더 지혜롭다”(눅 16:8)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혼자 드리는 예배로 내 정체의 흔들림이 없을까. 성경 말씀은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고 밝힌다.
다윗 왕의 찬양대 지휘자였던 아삽 시인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는 악한 사람이 더 잘 사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6~17)라고 고백한다. 성전은 주님께 가까이 가서 무릎 꿇고 드리는 기도를 뜻할 수 있다. 또한 어디나 계신 하나님은 반드시 교회라는 특정한 장소에만 계신 분은 아니시지만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 인간은 교회 예배 중에 더 친밀하게 하나님과 마주 앉는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모이고 또한 집집이 돌아가며 기쁘게 식사를 나누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임으로 이웃에게 칭찬받았다.
추운 겨울 어느 날 무디 선생 방에 손님이 오셨다. 인사 후 손님이 “선생님, 왜 꼭 교회 출석해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무디 선생은 아무 말 없이 난로 문을 열고 붉게 타고 있는 연탄 한 조각을 꺼내 들고 있다가 열이 식어 검게 되자 난로에 넣었다. 그러자 다시 활활 타오르는 것을 말없이 보고 있는 손님에게 “타는 연탄과 함께 있어야 계속 탑니다. 난로 밖에서는 불길이 오래 못갑니다”라고 말했다.
이 세상은 영적 싸움터인데 적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이 세상의 어두운 세력들과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이며 진리의 싸움터이다.(엡 6:12) 이 전쟁에서 부상한 성도들이 치료받고 다시 강한 전사로 세상으로 나가려면 교회에서 성령의 투사로 합동훈련을 받아야 한다. 신앙생활은 교회를 떠나면 못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오직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웨이크신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