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탄핵 찬반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교회 문을 열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시작해 서울구치소와 서울서부지방법원 등 윤석열 대통령의 동선을 따라 대규모 탄핵 찬반 집회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인근 교회들이 시민 불편이 없도록 교회 시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송하규 나라장로교회 목사는 지난달 자신의 SNS에 “지방에서 올라와 집회에 참석하는 분들을 위해 숙식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송 목사는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남태령에서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상경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방에서 온 청년들도 며칠씩 집회에 참석 중이라고 들었다”며 “비록 교회가 안산에 있는 상가교회이고 시설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지방에서 올라와 숙식을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교회 문을 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송 목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논쟁에 있어 분명한 의견이 있었지만 탄핵 찬반 진영 모두 환대의 대상이라고 전했다. 그는 “춥고 낯선 자리에 있는 모든 이에게 교회는 환대의 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며 “교회는 양쪽 진영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집회 참석자에게 화장실 문을 연 교회도 있다. 지난 18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경찰 추산 3만여명 규모의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 가운데 인근 A교회 화장실엔 대통령 지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교회 B행정목사는 “허락을 구하고 화장실을 사용하신 분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허락 없이 사용했다. 잇따른 화장실 사용과 집회 소음으로 주일예배 준비에도 차질이 빚어졌다”면서도 “하지만 용무가 급한 시민을 위해 늦은 밤까지 교회 화장실을 개방했다”고 전했다.
문턱을 낮춘 교회는 수도권 밖에도 있었다. 전북 정읍의 한 교회 주차장은 탄핵 찬반 집회 참석자들의 집결지로 사용됐다. 이 교회 행정담당인 C목사는 “지역주민을 위해 주차장을 개방했고 고속도로 출입로 옆에 교회가 있다 보니 탄핵 찬성 반대 측 시민들이 우리 교회 주차장에 모여서 출발했다”며 “특정 지지층의 집결 장소로 우리 교회 이름이 걸려 있는 걸 본 교인들이 항의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회는 주차장을 계속 개방할 방침이다. C목사는 “정치적 논쟁이 불거진다고 해서 교회가 좌로나 우로 치우쳐선 안 된다”며 “다만 교인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주보에 ‘우리 교회는 어떤 정치적 입장과도 무관하다’는 내용을 실었다”고 말했다.
교회가 이념 성향에 따라 시민들에게 선별적으로 편의를 제공해선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있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교회는 정치적으로도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돼야 한다”며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면 시민들의 교회 시설 사용을 막지 않은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덕원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도 “시위대의 폭력사태를 보면서 교회들도 시설 제공에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며 “사용 절차와 규칙을 정해둔 뒤 교회 시설을 내어주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이현성 박윤서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