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커가는 과정은 늘 흥미롭다. 세계적인 기업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유니클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의류 브랜드다. 스페인의 자라, 스웨덴의 H&M과 더불어 세계 1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의 거품 경제가 꺼진 이후 유니클로는 일본을 벗어나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섰다.
책은 무기력한 게으름뱅이였던 유니클로의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탄광촌 신사복 가게 ‘오고리상사’를 어떻게 지금의 유니클로로 키워왔는지의 여정을 생생히 담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인 저자는 야나이는 물론 그의 가족과 지인, 유니클로의 전현직 직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니클로의 빛과 그림자를 펼쳐 보인다. 저자는 유니클로 이야기에서 희망을 찾았다고 말한다. 일본 기업 99%에 해당하는 이름 없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유니클로는 희망 그 자체라는 것이다.
야나이는 도쿄 와세다대 재학시절 별명이 ‘종일 잠만 자는 잠꾸러기’였다. 늘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빈둥대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근처 재즈 카페나 파친코에 놀러 가곤 했다. 하숙집 주인에게 비친 그는 한없이 무기력하고 게으른 청년이었다. 늘 1등만을 강조하고 때로는 손찌검까지 했던 아버지와의 불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학 시절, 고향 우베 출신의 친구들과만 어울렸다. 일주일 내내 밤새 마작에 빠져 살기도 했다. 서서히 방탕한 삶에 지쳐갈 무렵,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최후통첩에 야나이는 오고리상사를 맡게 되면서 경영의 길로 들어선다. 아버지는 아들을 신뢰했고, 인감도장과 통장을 맡기면서 “실패할 거면 내가 살아 있을 때 해라”고 말하며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했다.
경영을 맡은 이후 10년은 암흑기였다. 당시 오고리상사는 신사복과 캐주얼 의류 매장 두 곳을 운영하며 7명의 직원이 있었다. 하루하루 버틸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야나이는 직원들을 다그쳤지만 하나둘 떠나갔다. 홀로 사색의 시간을 가지며 노트에 자신의 장단점을 적어나갔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한편, 다른 사람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생각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다 보니,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은 기분이 좋지 않다.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들은 나를 자기주장이 강하고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의 단점이다.” 고민하던 야나이는 자신만의 사고법을 찾아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직원들에게 추천한다고 한다. 요약하면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순위를 정해서 한다’는 단순한 원칙이었다.
야나이는 자신의 약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직접 뛰면서 보완했다. 그리고 세상의 지혜와 대화할 수 있는 책에서도 방법을 찾아내려고 했다. 일본 경영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혼다 소이치로 외에도 맥도날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의 책을 통해 대화를 나누며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완성해 나간다. 특히 “용감하게, 누구보다 먼저, 남들과 다르게”라는 크록의 말을 수첩에 옮겨 적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맥도날드라는 패스트푸드처럼 캐주얼 의류도 패스트 체인으로 만들어 팔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1980년대 초반 시찰 길에 오른 미국 서부의 한 대학에서 오늘의 유니클로를 만드는 구체적인 힌트를 얻는다. 구내매점에서 응대하는 직원 없이 학생들이 필요한 물건을 골라 계산대에 줄을 서는 모습을 보며 ‘언제든 누구나 원하는 옷을 고를 수 있는 거대한 창고’라는 콘셉트를 떠올렸다. 그렇게 히로시마 뒷골목에 자리 잡은 ‘유니크 클로징 웨어하우스’ 1호점이 탄생했다. 1984년 6월, 10년의 암흑기를 청산하는 ‘금맥’을 찾은 것이다.
책은 판매자가 디자인까지 직접 해서 대량 생산한 옷을 저렴한 가격에 전량 매입해 판매하는 홍콩의 지오다노를 모델로 제조소매업(SPA) 브랜드 ‘유니클로’로 변신하는 과정과 전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유니클로를 대표하는 ‘후리스’의 성공과 해외 주요 국가로 진출해 겪는 좌절의 역사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과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와 얽힌 인연도 쏠쏠한 재미로 엮여 있다.
저자는 야나이가 ‘장사꾼’에서 ‘경영자’로 변모하는 계기를 한 권의 책에서 찾았다고 설명한다. 바로 해럴드 제닌이 쓴 ‘프로페셔널 CEO’였다. 야나이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두 가지 명제, ‘현실의 연장선상에 목표를 두어서는 안 된다’와 ‘책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경영은 그 반대다. 끝에서 시작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를 새겼다. 그전까지 매일 노력하면 언젠가 성과로 나타나리라고 믿었던 야나이는 끝을 먼저 생각하는 사고방식으로 180도 바꿨다. 물론 그 끝은 ‘세계 최고’였다.
현재 유니클로는 ‘정보 제조 소매업’으로 변신 중이다. 그 구상의 시작은 애플 아이폰을 손에 쥐었을 때였다.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고객이 원하는 옷을 도출하면 회사가 목표를 향해 연동해 움직이는 방식. 야나이의 설명을 빌리면 ‘이어달리기에서 축구’로 회사의 구조를 쇄신하는 작업이다. ‘만든 것을 파는 사업에서, 팔리는 것을 만드는 사업’이라는 구호 속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야나이는 아직 보지 못한 세계 어딘가에서 성공의 힌트를 찾아 헤매고 있다. 저자는 유니클로가 걸어온 길을 이렇게 요약했다. “자신보다 훨씬 똑똑하고, 훨씬 앞서가는 사람들의 지혜를 탐욕스럽게 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지혜를 실행으로 옮겼다. 몇 번이고 넘어지면서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동료들과 함께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갔다.”
⊙ 세·줄·평 ★ ★ ★
·단순한 무기력한 게으름뱅이가 아니었다
·현실의 연장선상에 목표를 두어서는 안 된다
·꾸준히 주변에서 지혜를 구해야, 특히 책에서
·단순한 무기력한 게으름뱅이가 아니었다
·현실의 연장선상에 목표를 두어서는 안 된다
·꾸준히 주변에서 지혜를 구해야, 특히 책에서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