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식 기자의 느낌표!] 주술 무속과 보수교계의 자가당착

입력 2025-01-25 03:05
게티이미지뱅크

주술과 무속. 이른바 샤머니즘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영적 존재와 소통하며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근대 시절에는 주술과 무속이 한국의 토착 신앙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근대화를 거치면서는 토착 신앙의 영역에서 벗어나 잡신을 모시는 사이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람들의 인식이 성숙해지면서 불명확한 술법보단 이성과 합리에 기초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밑바닥으로 추락했던 주술 무속이 최근 들어 부활했다. 특히 정치 영역에서다. 현 정권이 출범한 이래 주술과 무속의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공천, 비상계엄 등 국가 현안마다 각종 무속인이 배후 세력으로 거론됐다. 대통령 자신도 손바닥 왕(王)자 등 주술 무속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받는 언행들을 해왔다. 정치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주술 무속 관련 프로그램들을 방영하는 미디어들도 부쩍 늘었다. 어느 순간 이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화된 요소로 자리 잡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주술과 무속은 기독교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독교는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회자와 교인들이 앞장서서 현 정권하에서 나타났던 문제들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야 마땅하다. 그러나 보수 교계 목회자들은 주술 무속과 관련한 의혹을 애써 외면했다. 제대로 된 비판을 하기는커녕 맹목적으로 대통령과 정권을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탄핵 정국으로 인해 극도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편향된 정치색을 드러내며 혼란을 부추겼다.

작금의 상황은 과거 러시아 제국에서 나타난 역사적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20세기 초 로마노프 왕조 하의 러시아 제국은 나라 안팎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밖으로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안으로는 볼셰비키가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이 거세졌다. 이 시기에 국정의 중심에 들어선 인물이 라스푸틴이다.

사이비 무속인이었던 라스푸틴은 황제와 황후를 꼬드겨 국정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정부 인사권과 전쟁 지휘권, 황실의 크고 작은 일에 깊숙이 관여했다. 다른 무속인들까지 끌어들여 자의적으로 국정을 펼치면서 러시아 제국은 나락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이때 러시아 제국의 중심 종교였던 정교회는 정부 안에 독버섯처럼 번지는 무속의 영향을 제어하지 못했다. 정교회 신자였던 황제를 찾아가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고 변화를 이끌어야 함에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결국 러시아 제국 몰락이라는 비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보이고 실제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말로는 성경적인 것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반성경적 모습에 침묵하고 노골적인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이러한 모순은 기독교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를 깎아 먹는 근본 원인으로 보인다. 최근 발표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 따르면 기독교인에 대한 신뢰도는 8.9%로 4대 종단 중 최하위였다. 불교인(39.8%)이나 천주교인(36.4%)과 비교해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일부 교인들의 자가당착적 모습으로 인해 기독교 전체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한민국 교계가 지난날을 성찰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