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당신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요.맘.때’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마음 돌봄’의 시각으로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이슈마다 숨어 있는 정신건강의학적 정보를 전하고 때로는 독자들에게 공감과 힐링의 시간도 제공하고자 합니다.
불안 증세로 약 석 달 전부터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안모(32)씨는 명절이 두렵다. 일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평소처럼 밝은 척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척들은 그를 앞가림을 척척 해내는 효녀로 생각하지만, 그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그는 가족들을 속인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낀다. 안씨는 지난 2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부모님에게도 약 복용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며 “친척들이 방문한 1박2일 동안 몰래 약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고 말했다.
소외와 고립… 명절이면 더 커지는 고통
설 연휴를 앞두고 상당수 정신질환자는 일종의 ‘명절 고립감’을 걱정하고 있다. 가족에게 자신의 질환을 숨기면서 느끼게 될 소외감 때문에, 혹은 가족의 차별적인 언행 탓에 받을 심적 고통 때문에 명절이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강박증 등을 이겨내고 ‘동료상담가’로 활동 중인 A씨는 우울증을 겪는 내담자 중 한 명이 몇 해 전 명절 이후 더욱 좌절한 모습을 봤다고 했다. 내담자의 친척이 어린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봐 우려되니 가족 모임에 오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A씨는 “가족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한동안 자신감이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30년째 조현병을 앓고 있는 B씨(56)도 “대부분의 일상을 무기력함 속에서 보내는 정신질환자들에게 명절은 휴일이 아닌 다른 가족과 자신을 비교하며 초라해지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이들을 위축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이들을 향한 편견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000명 가운데 64.6%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더 위험한 편’이라고 말했다.
조울증과 조현병을 이겨내고 현재 심리상담사로도 활동 중인 장우석(50) 작가는 “친척들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가족이 아프다는 것을 얘기하지 못하고 고립돼서 살아가는 많은 가족을 만났다”고 전했다.
조서은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별로 증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편견은 치료에 큰 장애가 된다. 특히 가족들이 드러내는 편견의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증상보다도 질환에 대한 사회적 반응에 더 어려움을 겪는다는 논문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들에게 힘이 되려면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의 가장 큰 정신적 지지 기반이 돼줘야 하는 게 가족이다. 이유나 심리상담사는 “가족에게 소외당하는 경험은 가족이 지닌 의미의 크기만큼 마음에 상처로 남을 수 있다”며 “특히 다수의 사람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정신질환자들은 대체로 민감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말 한마디에도 예민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가족의 수용적인 태도다. A씨는 “‘취업은 했냐’는 질문을 계속 듣는 게 힘든 것처럼 상대의 한 측면에만 집중하면 누구나 상처받을 수 있다. 질환을 언급하는 것도 그 사람의 취약성에 주목하는 것”이라며 “‘잘 지냈냐’는 안부 인사 정도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도 “내가 정신질환자보다 더 낫다는 시각으로 섣부른 조언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이들 역시 무조건 가족을 회피하진 않아야 한다. 이 상담사는 “가족과 잠깐 식사만 하고 돌아오거나 심적으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 곁에 있어 주는 등 당사자의 자아 강도에 맞춰 조금씩 적응하는 게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에게 도움받을 수 없다면 자조 모임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운영하는 자살유가족 자조 모임의 리더인 C씨(43)와 D씨(64)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우울감을 겪었지만 다른 유가족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C씨는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면 ‘마음의 허들’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 자조 모임 멤버인 B씨도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나름의 삶을 꾸리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조 교수는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위로가 강한 연대감을 주며 긍정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