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도 평범한 신앙생활 하고 싶어… 돌봄·위로가 필요하다

입력 2025-01-25 03:00
한 사모가 두 손을 모으고 감격하는 모습. 그래픽=강소연

목사의 부인인 ‘사모’는 교인도 아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목사처럼 신앙 지도자로 보는 인식도 많지 않다. 사모 자체가 직분이 아니다 보니 교회 안에선 교인과 남편인 목사 사이에서 ‘낀 존재’가 되기 쉽다. 남편과 교인 사이를 맴돌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늘 외롭다. 어려움을 털어놓을 곳도 마땅치 않다. 자칫 교인들에게 속내를 꺼냈다가 어떤 사달이 날지 알 수도 없다.

최근 한 목회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모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글을 써 반향을 일으켰다.

공훈 신금호교회 담임목사가 글의 주인공이다. 사모에 대한 공 목사의 상념은 시종 사모들의 답답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하다.

“한 교인에게 선물하면 나는 왜 안 주냐 말을 듣는다. 그에게도 선물하면 사모는 돈이 많구나 소릴 듣는다. 사람들 앞에 보이면 나선다는 말을 듣는다.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면 어디서 뭐 하냐는 소릴 듣는다. 주방에서 일하면 사모 때문에 불편하다 하고 일하지 않으면 사모랍시고 위세 떤다 한다. 직장을 다니면 맞벌이라 부자니 좋겠다 하고 직장 안 다니면 교회도 어려운데 뭐하냐 한다.” 공 목사는 “모두가 다 어려운 시기, 사모만 더 힘든 건 아니지만 목사 배우자에 관한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요청으로 글을 마쳤다.

글에 달린 댓글에는 이 의견에 공감하는 내용이 줄을 이었다.

“교회에서 가장 예쁘고 참한 자매 데려와 죽도록 고생만 시키는 게 사모라던데…. 세상 모든 사모님이 행복하시길.” “사모가 검은색 옷을 입고 오면 왜 상복을 입고 왔냐 하고 흰색 옷을 입으면 왜 소복을 입었냐고 괴롭히는 장로 권사가 있지요.” “구구절절 너무도 격하게 공감합니다. 담대하자 마음먹어도 골병드는 사모가 적지 않아요.” “(사모인) 아내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위로받고 사랑으로 품어야 할 대상이 아내인 거 같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겠습니다. 아내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 준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 글이 쏘아 올린 공은 사모의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교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목사를 청빙하면서 ‘사모 이력서’와 ‘건강검진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게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이런 행정절차만 놓고 보면 사모를 목회의 동역자로 인정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교회에 짐이 될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게 사모들의 지적이다.

사모들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전하면서도 “꼭 익명으로 해달라. 이름이나 나의 신상을 알아차릴 수 있는 내용이 언급되면 목사님이 어려워진다”고 했다. 이런 당부 끝에 이어진 고백은 사모들의 위태로운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서울의 한 교회에서 사역하는 부목사의 부인인 A사모는 2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남편이 사역지를 옮길 때마다 하나같이 나의 이력서와 건강검진서를 요구했다”면서 “날 정식으로 청빙할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서류를 내라고 하는지 여전히 의아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면 내가 교회에 부담을 줄지를 미리 알아보려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고 말했다.

직업이 있는 사모를 향한 공세는 더욱 날카롭다.

한 대기업에 다니는 B사모는 20년 가까이 자신의 직업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교회에서 지원해 주시는 사택 지원금이 너무 적어 서울에서 네 명 가족이 살려면 일을 그만둘 수 없다”면서 “그동안 ‘사모가 일하면 결국 목사 앞길 막는다’ ‘목사 혼자 심방 다니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등의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는데 위로인지 걱정인지 비난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남편의 목회에 부담도 주지 않아야 하고 교인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판을 쌓아야 하는 사모들은 늘 사주경계를 한다고 했다. 교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서다. 이런 어려움을 어깨에 지고 사는 사모들의 바람은 뭘까.

50대 C사모의 꿈은 소박했다. 그는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평범한 신앙생활이란 교회학교 교사나 찬양대원, 식당 봉사를 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C사모는 “어려서부터 교회 봉사 열심히 하다 목사 남편을 만났는데 사모가 된 뒤 교회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예배만 드린 뒤 조용히 사라지는 게 사실 좀 힘들다”면서 “언젠가부터 교인은 물론이고 동료 사모들과도 2~3분 이상 이어지는 대화를 하지 않고 있고 교회 안이나 근처에서 함께 커피를 마신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하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굉장히 활달한 성격인데 아무도 그걸 모를 정도로 교인들과 접점이 없다”고 덧붙였다.

D사모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는 “그저 평범하게만 지내고 싶지만 이게 늘 힘들다”면서 “은혜받고 기뻐야 할 교회에서 항상 그림자처럼 지내는 처지가 스스로 생각하면 좀 딱할 때가 있다. 딸에겐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기독교 상담사들 사이에선 사모들의 우울증이 단골 연구 주제다. 그만큼 위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교계에서도 사모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사모들이 지난해 서울 강동구 오륜교회에서 열린 ‘사모 리조이스’에 참석해 포토월 앞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륜교회 사모 리조이스 제공

서울 오륜교회(주경훈 목사)는 2003년부터 사모들의 영적 회복과 충전을 위해 ‘사모 리조이스’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오는 4월 7일부터 사흘 동안 진행된다. 매년 열리는 ‘사모 리조이스’는 접수 시작 후 10분이면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지금까지 7000여명의 사모들이 교단과 나이를 뛰어넘어 사모라는 공감대 안에서 치유와 사랑의 은혜를 경험했다. 1년에 단 한 번 열리는 행사를 위해 오륜교회는 매년 1월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매주 회의하며 기도로 준비한다. 목회자인 남편과 성도를 위해 늘 헌신하는 사모들이 이때만큼은 온전히 쉴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사모 블레싱&리프레시’(리프레시)는 평균 29년의 경력을 가진 초교파 사모 18명이 주축이 된 공동체다. ‘생기가 넘치게 하다’ ‘새로운 활력을 주다’ ‘새롭게 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모블레싱&리프레시(리프레시)’ 팀이 지난해 9월 경남 양산 명동교회에서 경남지역 교회 사모들과 함께 애찬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리프레시 제공

리프레시 사역팀은 국내외 선교사 사모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고 치유하는 데 힘쓰고 있다. 사모들은 20년 전 두란노의 ‘사모 예수 제자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사역의 자리에서 겪은 정체성의 혼란과 성도들의 말로 인한 상처 등으로 마음이 지친 상태였지만 교육과 훈련을 통해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며 치유와 회복의 기쁨을 누렸다. 사모들은 다른 사모들을 위로하기 위해 2012년부터 리프레시 사역을 시작했다.

의정부예원교회 임성희 사모는 “사모로 살며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같은 길을 걷는 동료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리프레시 팀은 회복이 필요한 사모가 있는 곳이라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찾아간다. 리프레시 프로그램 중 마지막 세족식에서는 사모들이 서로 발을 씻어주며 사랑을 나누는데 늘 눈물바다가 된다.

임 사모는 “하나님은 매번 놀라운 방법으로 부족한 재정을 채워주셨고 그때마다 하나님이 우리가 하는 사역을 기뻐하신다는 확신이 생긴다”며 “사모들을 돕기 위해 찾아가지만, 사역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더 큰 회복을 경험한다. 오는 6월에는 아프리카 우간다 현지 목회자 부부 세미나도 준비 중인데 이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장창일 박효진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