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과 국제 공급망에 정통
정교하고 용의주도한
산업정책 트럼프에 조언
한국 제조업 특장 잠식 가능성
입증된 ‘가차 없는 효율 추구’
미 공공부문에 적용 태세
한국은 개혁 정체 넘어 후진
국회까지 ‘입법 폭탄’
법 만능 앞에 도전과 혁신 실종
기술 변화에는 가속도 붙어
우리는 이 파도 견뎌낼 수 있나
정교하고 용의주도한
산업정책 트럼프에 조언
한국 제조업 특장 잠식 가능성
입증된 ‘가차 없는 효율 추구’
미 공공부문에 적용 태세
한국은 개혁 정체 넘어 후진
국회까지 ‘입법 폭탄’
법 만능 앞에 도전과 혁신 실종
기술 변화에는 가속도 붙어
우리는 이 파도 견뎌낼 수 있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문제적 인물이다. 명과 암이 그처럼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도 드물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금, 그의 인격과 언행에 대한 도덕적 가치 판단은 일단 제쳐놓아야 할 것 같다.
트럼프가 집권 2기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머스크의 경험과 의견에 의존하는 징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머스크의 급부상이 트럼프 집권에 공을 세운 데 따른 논공행상 정도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에게 가장 절실한 조언은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한 구체적인 노하우일 것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려는 트럼프노믹스의 핵심에 미국 제조업 재건이 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이 분야에서 머스크만큼 이론과 실질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없다. 미 텍사스주 테슬라 공장에서의 전기차 대량 생산, 스페이스X의 우주탐사선과 로켓 발사 성공,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의 도약 등으로 머스크는 ‘미국 내 제조’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다. 비용 감축과 효율성에 대한 광적인 몰두, 위기감을 조성하면서까지 거세게 몰아붙이기, 실패를 통해 배우면 된다는 식의 배짱이 이를 가능케 했다. 개념과 설계는 미국 본사가 맡지만 제조는 외국으로 아웃소싱하는 미국 산업계의 흐름을 역전시킨 게 머스크다.
문제는 머스크의 가세로 미국의 프렌드쇼어링(동맹국의 기업까지 미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현상)이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고관세 위협’뿐 아니라 세부적인 산업정책 조정을 위한 수단이 하나 더 추가되게 생겼다. 현대자동차의 전 고위 임원은 “생산 과정과 글로벌 공급체계에 정통한 머스크가 미 정부 핵심에 있는 것은 한국 등 아시아 제조 기업들에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고 했다.
머스크의 조언과 영향력 행사로 보다 정교하고 ‘용의주도한’ 미 제조업 부흥 정책이 시행될 수 있다. 이는 특히 제조업 기반 수출이 주 성장 동력인 우리 경제에는 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대기업들은 줄줄이 미국 내 생산 공정을 늘리고 있다. 앞으로 국내 산업 공동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신설된 미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서 머스크 역할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효율부가 내건 목표는 중복된 연방 프로그램과 불필요한 지출 제거, 기관 구조 조정, 연방정부 인력 감축, 경제성장과 혁신을 저해하는 과도한 규제 철폐 등이다.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하지만 머스크가 그동안 보여준 실행력과 감세로 줄어들 세수로 인해 지출 구조조정이 절박한 트럼프 행정부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이 부처의 활동에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규제가 적고 공공부문 규모도 큰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차 없는 효율성 추구’가 대명사인 머스크 같은 민간인에게 공공 부문 개혁의 칼날을 맡겼다.
우리 현실은 너무 대조적이다. 기업 현장에서 시급하다고 호소해온 주52시간 근로제 예외 확대 같은 조그마한 규제 완화도 좌초된 상황이다. 각 부문의 생산성을 올리고 사회적 낭비를 줄일 더 큰 폭의 제도 개선은 말할 것도 없다.
행정부발 과도한 규제와 민간부문 개입만이 아니다. 국회의 ‘대량 입법’ 폭탄도 있다. 지난해 5월 30일 개원한 22대 국회는 출범한 지 반년 만에 6900여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약 5400건인 현행 법령(법률·대통령령·부령) 전체를 훨씬 능가하는 수의 법안을 개원 반년 만에 쏟아낸 것이다. 물론 실제 처리되는 법안은 이보다 적겠지만 이에 깔린 법 만능주의는 무섭다. 법 만능주의는 모든 문제를 법과 규제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법 규제 만능주의가 횡행하는데 대담한 도전과 혁신이 일어날 수 있을까.
머스크로 상징되는 미국의 혁신 드라이브는 한국 정치와 경제에 대한 강력한 경고 신호다. 세계 각국이 모두 고전하는 가운데 나홀로 고성장을 구가하는 미국이 이처럼 변신에 적극 나서는데 한국은 정체를 넘어 후진 기어를 밟고 있다. 여기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기술의 변화 속도에는 가속이 붙었다. 최근 2년간 AI 기술로 인한 생산성 향상분이 1990년대 중반 인터넷 도입 초기에 비해 2배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 정치 경제 시스템은 이 대변화의 파도를 견뎌낼 수 있을까.
배병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