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이재명 일극체제’를 비판하며 더불어민주당의 자성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구속으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흔들리자 그간 숨죽여온 비명(비이재명)계 ‘잠룡’들이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인 임 전 비서실장은 21일 “대화와 타협을 가볍게 여기고 이재명 대표 한 사람만 바라보며 당내 민주주의가 숨을 죽인 지금의 민주당은 과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까”라며 “이제는 민주당 스스로를 돌아볼 때”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당이 국민적 지지를 받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그는 “일상이 돼버린 적대와 싸움의 정치는 안타깝다”며 “원칙을 소홀히 하고 자신의 위치를 먼저 탐하고 태도와 언어에 부주의한 사람들이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고 행세를 하는 게 참 불편하다. 왜 안 그랬던 사람들까지 그렇게 변해가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찰이 없는 일은 어떻게든 값을 치르게 된다. 그게 두렵다”고 덧붙였다.
다른 중량급 정치인들도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20일 ㈔한반도평화경제포럼이 주최한 영화 ‘하얼빈’ 상영회에 참석한 김부겸 전 총리도 민주당의 행보를 지적했다. 김 전 총리는 최근 민주당의 지지율 추이를 두고 “(윤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여유 있게 국정을 리드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이 작용한 것 같다”며 “(민주당이) 국민 생각 안 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는 것이라는 실망감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귀국 후 꾸준히 현안 관련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날에는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의 ‘내란 선동’ 모습을 지적하면서 “저들의 모습에서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을 찾는다”고 적었다. 그는 “극단적 증오와 타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일방주의, 독선과 오만”을 언급하며 “우리는 정반대로 가야 한다. 저들과 달라야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민주당의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친명(친이재명)계는 즉각 반발했다. 강성 친명 조직 더민주혁신회의는 논평을 통해 “작금의 정치 현실을 만든 당사자들이 반성은커녕 여전한 기득권의 태도로 가르치려 나섰다”며 “아군을 향한 총질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기적인 자폭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민주당의 지지율 약세가 지속할 경우 비명계를 비롯한 다양한 그룹에서 현 체제와 각을 세우는 목소리가 분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에서도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결과가 유지된다면 당 안팎의 공세는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한 친명계 의원은 “2심 결과에 따라 어느 정도 당내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도 “이제 와서 다른 주자를 내세우자는 말은 현실적으로 별 의미 없는 얘기”라고 평가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