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의 ‘사법기관 흔들기’가 선을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내란 혐의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수사 절차, 재판의 공정성·형평성 등을 전방위적으로 문제 삼고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서는 향후 불리한 판결 결과가 나올 때를 대비해 ‘불복’ 여론전을 펼치기 위한 정략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강성 지지층 결집에만 몰두한 채 법치 존중이라는 보수 공당의 전통마저 저버리고 있다는 한탄이 내부에서도 나왔다. 국민의힘 당 강령은 ‘사법부가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법률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실질적 장치를 마련한다’고 돼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과거 연수원(23기) 동기”라며 “(두 사람은) 노동법학회를 함께하며 호형호제하는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법조계에 파다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또 “민주당의 차기 대선주자이자, 실질적 탄핵소추인인 이 대표의 절친이라면 헌재소장 대행으로서 탄핵심판을 다룰 자격이 과연 있겠나”라는 언급도 했다.
권 원내대표는 “문 대행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으면 탄핵심판의 공정성이 확보될 수 없다”며 “헌재가 명확히 답변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헌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경고했다. 또 윤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심판 진행 속도가 다르다는 점을 거론하며 “헌재와 민주당의 짬짜미식 고의 지연 전술”이라는 주장도 폈다. 당 지도부가 공식 석상에서 ‘소문’을 근거로 사법 기관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권영세 비대위원장도 전날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거론하며 “권력의 눈치만 보는 비겁한 사법부,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장본인들”이라고 법원 공격 대열에 동참했다.
국민의힘 내에선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 원인을 사법부가 제공한 측면이 크다는 취지의 발언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김기현 전 대표는 “사법부는 남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이 법치주의의 위기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고 대대적인 혁신을 해야 한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윤상현 의원은 “사법부의 방망이가 윤 대통령의 영혼마저 파괴했다”며 “공명정대할 자신이 없으면 편파라도 하지 마시기 바란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보수를 자처하는 국민의힘마저 사법부를 흔들고, 법원을 공격한 폭력배들을 옹호하는 시대가 돼 버렸다”며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보수의 가치도 함께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처럼 당이 두 쪽 나는 것보다 대통령과 함께 당이 똘똘 뭉치는 게 향후 정국 주도권을 쥐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탄핵 문제를 진영대결로 끌고 가기 위해 사법 절차나 판결의 부당성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에 대한 불신도 강한 사회인데, 사법부 불신까지 조장한다면 도대체 이 나라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라며 “대의민주주의와 헌정질서 전반을 흔드는 것으로 굉장히 위험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