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보유국’ 지칭은 북·미 양자 대화 포석?… 비핵화 흔들리나

입력 2025-01-22 00:00 수정 2025-01-22 00: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실내 경기장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자신이 서명한 행정명령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이뤄진 조치 78개를 철회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 일성으로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보유국)로 지칭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언급한 것은 북·미 대화 재개의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트럼프 발언에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대북 정책의 핵심 원칙 역시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북·미 직접 담판 프로세스를 더 구체화하기 전 한국 정부 차원의 개입을 강화하고 비핵화 목표 훼손 시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최근 청문회에 나온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후보자와 동일한 ‘뉴클리어 파워’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에 주목했다. 이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합법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공식용어인 ‘뉴클리어 웨폰 스테이트’(nuclear-weapon state·핵무기 국가)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뉴클리어 파워는 국제사회에서 비공식적으로 핵능력을 인정받는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을 언급할 때 사용돼 왔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NPT 체제는 깨지 않는 선에서 북한의 핵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핵보유국 지위를 바라온 김 위원장에게 “대화에 나서면 얻을 게 있다”는 일종의 유인책을 던졌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칭한 건 처음이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오른쪽)와 JD 밴스 부통령의 부인 우샤 밴스. AFP연합뉴스

한 정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미국이 향후 북한과 회담을 준비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비공식적으로 북핵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며 “우리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트럼프 발언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스몰딜’을 앞세워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라서 한국에는 매우 좋지 않은 신호”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북한을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식할 경우 대북 제재 완화를 매개로 핵군축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핵군축협상의 골자는 미국 본토 등에 직접 영향을 주는 위협만 우선 차단하자는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동결하거나 감축하는 대신 단거리탄도미사일(SRBM)과 전술핵 보유는 묵인하는 식의 협상 시나리오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들은 최근 제재 무용론을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우리 정부도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 핵 용인은 연쇄적으로 한국·일본 등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미국의 안보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계속 설득해야 할 것”이라며 “나아가 한국이 주도적으로 비핵화 목표와 절차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는 등 우리 입장을 계속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한·미 양국은 그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에 대해 확고하고 일치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며 “정부는 미국 새 행정부와 긴밀한 한·미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택현 박민지 박준상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