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한번 때려봐, 北으로 가라”… 폭력·폭언에 시달리는 기동대

입력 2025-01-22 02:27
경찰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헬멧 등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3차 변론이 진행된 이날 헌재 주변에는 경찰 기동대 64개 부대, 4000여명이 투입됐다. 윤웅 기자

서울경찰청 소속 기동대원 A씨는 지난 19일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떠올리며 “그날은 말 그대로 공포스러웠다”고 21일 말했다. A씨는 당시 동료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구타당하고, 쇠파이프 등 흉기를 든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손쓸 틈도 없이 지켜봐야 했다고 괴로워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과격 시위가 계속되면서 경찰 기동대원들은 집회 참가자들로부터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경찰들은 지난 한 달간 집회 현장에서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동료들이 폭행당하는 상황을 직접 목격하면서 무력감과 분노를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서부지법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폭행당해 안면에 피를 흘리는 기동대원들의 영상은 동료들 사이에서 큰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지지자들과 충돌한 경찰 중 50여명이 부상을 입고, 7명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기동대원들은 진압복이 아니라 형광색 점퍼만 입은 채 쇠파이프, 소화기 등을 든 지지자들을 막아야 했다.

일부 지지자는 경찰에게 폭언도 쏟아냈다. A씨는 “시위대가 경광봉으로 어깨와 팔을 때리면서 ‘너를 낳은 부모님이 불쌍하다’ ‘북한으로 돌아가라’ ‘민주당의 개’라고 소리쳤다”며 “사명감 하나로 이 직업을 택했는데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명분실종 탄핵무효’라고 적힌 손팻말과 태극기, 성조기 등을 들고 탄핵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웅 기자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집회에 다수 출동했던 기동대원 B씨도 심리적 피해가 크다고 호소했다. 그는 “시위대를 저지하자 한 참가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모자를 강제로 벗기려 했다”며 “화를 삭이려 눈을 감았더니 ‘너도 때려보라’고 하는데, ‘그만하십시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 밤새 눈물이 났다”며 “국민을 지키는 경찰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상황에 큰 좌절감이 든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경찰을 폭행하는 등의 행위는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규모 집회 현장에서 즉각 체포할 경우 다른 지지자들의 더 큰 항의로 현장 혼란이 빚어질 수 있어 채증 기록 등을 바탕으로 사후 검거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현장 경찰들은 조롱과 폭행에 그대로 노출돼 과도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지만 치료를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B씨는 “동료들 사이에선 잠을 설치거나 악몽을 꿨다는 얘기가 많지만 과도한 초과근무로 병원에 갈 시간도 없다”며 “일부는 승진에 영향을 줄까봐 치료 지원 대신 개인적으로 정신의학과를 찾기도 한다”고 했다.

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