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좀비기업’의 증시 퇴출 작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변변한 이익을 내지 못하면서 유상증자나 외부 차입 등으로 연명해온 이들 기업은 시장에서 제때 퇴출당하지 않아 한국 증시 신뢰도 하락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공모가 과열, 상장 직후 급락 등의 문제가 반복됐던 상장(IPO) 제도도 함께 손질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은 21일 ‘IPO 및 상장폐지 제도 개선 공동세미나’에서 이 같은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또 규정 개정을 통해 이르면 1분기부터 제도 개선에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한 또 하나의 주요 과제로서 IPO와 상장폐지 제도의 개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코스피 시총 500억 미만이면 퇴출
먼저 상장폐지 요건을 높인다. 시가총액에서 코스피 500억원, 코스닥 300억원 이하 기업은 기준 이하가 30일 지속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에도 시가총액을 충족하지 못하면 이의신청 없이 상장 폐지된다. 현행 기준은 코스피 50억원, 코스닥 40억원이다. 요건이 너무 낮아 최근 10년간 이를 통해 상폐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제도 연착륙을 위해 2026년 200억원(코스닥 150억원), 2027년 300억원(코스닥 200억원), 2028년 500억원(코스닥 300억원)으로 단계적으로 기준을 상향한다.
시가총액 1000억원(코스닥 600억원) 이하 기업에 적용되는 매출액 요건도 현행 50억원(코스닥 30억원)에서 2028년 300억원(코스닥 100억원)까지 높인다. 이번 방안의 상장폐지 요건을 적용하면 지난해 기준으로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회사는 코스피 62곳, 코스닥 137곳이다.
외부 감사인 의견 요건도 강화된다. 현재는 감사 의견이 미달하면 다다음 사업연도 감사의견이 나올 때까지 개선 기간을 부여했다. 이 때문에 상폐 심사가 장기화했고, 저성과 기업이 다른 사유로 인한 상폐를 피하고자 고의로 감사 의견 미달을 유도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는 2번 연속 감사의견이 미달하면 즉시 상폐하기로 했다. 다만 회생·워크아웃 기업은 추가 개선 기간을 허용하는 예외를 둔다.
상폐 절차는 짧아진다. 기존 코스피는 심의 단계 2심에 개선 기간 4년, 코스닥은 3심에 개선 기간 2년으로 운영돼 좀비기업이 한동안 증시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심사 절차 효율화를 위해 코스피는 개선 기간을 4년에서 2년으로 줄인다. 코스닥은 3심제에서 2심제로 심의단계를 축소하고 개선 기간도 2년에서 1년 6개월로 줄인다. 상폐된 기업은 금투협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 ‘K-OTC’에서 6개월간 거래를 지원해 매매를 돕는다.
기관 책임 높여 의무보유 유도
‘단타(단기 투자)’에 매달리게 만든 IPO 시장 제도도 손본다. 특히 기관 단타는 수요 예측이 과열돼 공모가 거품을 유발해 상장일 반짝 급등 후 지속해서 주가가 미끄러지는 부작용이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는 기관 의무보유 확약 우선 배정제도를 도입해 단타가 아닌 중장기 기업 가치 기반 투자를 유도하기로 했다.
기관투자자 배정 물량 중 40% 이상을 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약속한 기관에 우선 배정한다. 확약 물량이 40%에 미치지 못하면 상장주관사인 증권사가 공모 물량 1%를 취득해 6개월간 보유하도록 할 예정이다. 일정 기간 주식을 보유하는 조건으로 증권신고서 제출 전 기관 투자자에 사전 배정을 허용하는 코너스톤투자자 제도와 사전수요예측제도도 추진한다.
공모가 버블의 주범으로 꼽힌 과도한 수요예측 참여를 막기 위해 기업가치 평가 역량이 부족한 소규모 기관 참여는 제한한다. 의무보유 확약을 어기면 향후 수요예측 참여 제한 등 제재를 엄격히 적용할 예정이다.
이광수 장은현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