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에 민감한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김정은과 우호적이다. 북한은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말했다.
일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을 이렇게 비유한 적은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공개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용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무게감을 지닌다는 점에서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다 무역협정 재검토,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 폐지 등 우리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정책들도 내밀었다. 2기 트럼프 시대의 우려가 금세 현실화했는데 한국은 리더십 부재 사태로 대응 여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부에선 핵보유 발언에 대해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히 강조한 차원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발언 전체 맥락을 보면 간단히 여길 일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 말미에 “김정은은 엄청난 콘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에는 (콘도 시설이 들어설) 많은 해안이 있다”고도 말했다. 이는 북한 내 관광사업 개발에 대한 관심을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위해선 대북 제재 해제가 선행돼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북한 핵보유 인정→군축→제재 해제→원산 등 해안 도시 개발’이라는 ‘스몰딜’ 플랜을 한국과의 상의 없이 진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지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무역협정 재검토 지시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과 중국과의 협정이 예시로 제시됐다. 하지만 재검토 목적이 ‘미 우선주의 관점’인 만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안전지대로 보긴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행정부 때 한·미 FTA 개정을 업적으로 내세웠던 터라 우리로서도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전기차 의무화 폐기 선언은 이차전지 시장 점유율이 중국 다음인 한국 업체들에 직격탄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수정 또는 폐기도 언급하고 있어 IRA투자에 따라 거액의 보조금을 받기로 한 삼성전자(47억4500만 달러), SK하이닉스(4억5800만 달러)에게도 발등의 불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발부터 난관에 봉착한 형국인데 정작 정부는 리더십 공백으로 대미 대응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여서 정상과의 소통, 채널 구축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당장 외교부를 중심으로 백악관 및 미 의회 동향을 철저히 분석하며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 홀로는 역부족이기에 국회와 기업을 아우른 태스크포스 등도 꾸릴 필요가 있다.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주의나 인권 등 고상한 가치는 관심 없다. 동맹도 철저한 손익계산의 대상으로 여긴다. 이런 성향을 역이용해 한·미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조선·원전 등 공동 사업 추진, 안보 협력 등에 적극 집중해야 할 것이다. 넋놓고 있다간 안보 외교 경제 분야에서 모두 한국 패싱을 당할 수 있다. 트럼프발 태풍은 탄핵 사태 못지 않은 위기라는 생각을 여야정이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