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 플랫폼 규제 정책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국내에서 구글, 메타, 애플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와 통상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국내 플랫폼만 규제하면 토종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미국 빅테크의 기술 경쟁력 향상을 위해 조 바이든 정부보다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의 공정위 격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는 인공지능(AI) 기술 규제에 반대한 앤드루 퍼거슨 FTC 위원이 지명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빅테크 수장들과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대통령 취임식에는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 X(옛 트위터)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구글 모회사)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립자, 팀 쿡 애플 CEO 등이 총출동했다. 미 IT 전문매체 더버지는 “많은 빅테크 수장들이 마라라고 별장을 순례하며 트럼프와 직접 기술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빅테크 수장들과의 만남을 언급하며 “첫 임기 때는 모든 사람이 나와 싸웠지만,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와 방통위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플랫폼 기업 규제를 재차 강조했다. 공정위는 업무계획에 “거대 독과점 플랫폼의 4대 반(反)경쟁 행위(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를 신속히 차단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불법·유해 콘텐츠 관련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온라인서비스 이용자보호법’(가칭) 제정을 추진한다. 방통위는 이 법을 ‘한국판 디지털서비스법(DSA)’이라고 설명했다.
권세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실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공정위의 플랫폼 규제는 국내 기업 뿐 아니라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빅테크 규제에 강경한 유럽연합(EU)도 미국 빅테크에 대한 조사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권 실장은 “국내 플랫폼 규제도 EU 사례를 보고 만든 것이니, 이들의 행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미국 눈치를 보고 구글 등 해외 빅테크를 제외한 규제는 형평성 문제가 발생될 소지가 크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 기존에 추진하던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 제정을 포기하고,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독과점 플랫폼 규제 시 사전 지정에서 사후 추정으로 수위를 낮춘 게 핵심이다. 그러나 업계는 해당 개정안 입법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해외 기업과 국내 기업의 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토종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