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의 음악 세계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요.”
피아니스트 조성진(30·사진)이 올해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5)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피아노 독주곡 12곡과 피아노 협주곡 2곡을 녹음했다. 조성진이 한 작곡가의 전곡을 녹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주곡 앨범은 지난 17일 발매됐고,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와 녹음한 협주곡 앨범은 오는 2월 21일 나온다. 앨범 발매를 맞아 20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조성진은 “3년 전에 라벨 탄생 150주년 기념 음반을 내자고 DG에 제안했다. DG가 받아준 덕분에 좋은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앨범 녹음 계기를 밝혔다.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라벨은 모차르트나 베토벤에 비해 곡을 많이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교한 음악 구조와 어법으로 음악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지난 2017년 또 다른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 음악을 담은 앨범을 발매한 적 있는 조성진은 “인상주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드뷔시와 라벨을 헷갈린다. 이번 앨범으로 두 작곡가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고 싶다”면서 “드뷔시는 자유롭고 로맨틱하지만, 라벨은 지적이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다. 악기의 사용이나 선율의 구성이 매우 치밀한 라벨은 천재적인 작곡가”라고 강조했다.
사실 조성진은 어릴 때부터 라벨에 친숙했다. 12세인 2006년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의 프로그램 중 하나는 라벨의 ‘거울’ 중 ‘어릿광대 아침 노래’였다. 그리고 예원학교 재학 시절엔 어렵기로 소문난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중 ‘스카르보’를 즐겨 연주했다. 2012~2017년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공부하며 라벨에 한층 익숙해진 그는 “라벨의 경우 연주자로서 해석의 폭이 넓지 않다. 라벨은 연주자가 악보에 쓰인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면서 “그래서 라벨의 작품은 소리의 질감이나 분위기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평소 좋아하는 라벨의 음악이지만 앨범 녹음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었다. 2023년 ‘헨델 프로젝트’ 이후 2년 만에 새 음반을 낸 조성진은 “콘서트에서 연주할 때보다 녹음할 때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녹음하고 들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많다. 마치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면서 “음악의 핵심을 녹음으로 잘 담아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앨범 작업에 임한다”고 설명했다.
조성진은 올해 세계 각국에서 이번 앨범에 담긴 라벨 피아노 독주곡 전곡 리사이틀 투어를 가진다. 연주 시간(인터미션 2회 포함)만 무려 세 시간 걸린다. 한국에선 6월 12일부터 7월 6일까지 8개 도시에서 관객과 만난다. 조성진은 “최근 리히텐슈타인에서 리사이틀을 했는데, 마지막 곡을 연주할 즈음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고 웃으면서 “하지만 라벨의 음악 세계를 관객과 공유하고 나 자신도 라벨의 음악 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니 피곤함보다 즐거움이 더 컸다”고 말했다.
한편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지 어느덧 10년이 됐다.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를 묻자 그는 “자신을 평가하는 일이 언제나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다양한 사람과 만나서 많이 배우고 영감을 얻는 기간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