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되면 이는 한국이 북한의 ‘핵 인질’이 된다는 것”이라며 “한반도의 핵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1991년 철수한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2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제안하며 일본 등과 함께 ‘핵 부담 공유 협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북핵으로 인한 안보 위협을 낮춰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북한이 핵을 폐기할 때까지 우리도 핵을 배치하겠다고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핵 협상을 시도할까.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북한과 협상하는 게 국익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미동맹보다 북·미 협상을 통한 이익이 더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북·미 간 핵 군축 담판은 반드시 추진될 것으로 본다. 트럼프가 알렉스 웡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수석부보좌관으로 임명하고 충성파인 리처드 그리넬을 대북특사로 임명한 것은 북·미 협상을 준비한다는 징후다.”(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 직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보유국)라고 지칭했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며 대화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북·미 회담 시기 전망은.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위한 전쟁 관련 외교 현안부터 해결한 뒤 북·미 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 오를 의제는.
“2019년 ‘하노이 노딜’ 때와 달리 현재 북한은 러시아라는 뒷배를 확보했다. 확실하게 얻을 게 있다고 판단될 때만 테이블에 앉을 것이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핵무기는 폐기·동결하겠다는 조건을 달 것이다.”
-‘코리아 패싱’ 현실화할까.
“가능성이 크다. 스몰딜이 현실화하면 한·미동맹은 뒷순위로 밀린다. 스몰딜이라는 건 결국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인데, 한국으로선 핵 인질이 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핵 위협을 직접 받게 된다.”
-북한의 핵 도발 양상은 어떻게 전개될까.
“북한은 몸값을 높이는 조치를 할 것이다. 미국 본토를 확실히 겨냥하는 시험발사 등 대미 위협을 고도화하는 여러 조치를 할 것이다.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해 필요한 외교안보 정책은.
“한·미동맹에만 기댈 수는 없다. 미국에 ‘우리도 핵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고 맞서야 한다. 1991년 철수했던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가져다놔야 한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한반도의 핵 균형이 이뤄질 수 있다.”
-현실화 가능성이 있나.
“미 상원 공화당 짐 리시 외교위원장은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수시로 얘기했다. 로저 위커 상원 군사위원장도 한국과 일본이 핵 부담 공유 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했다.”
-핵보유국 인정을 막는 방향이 낫지 않나.
“전술핵 재배치를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을 견제하는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은 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운용비를 요구하겠지만 감수해야 한다.”
-상황이 더 악화할 수도 있지 않나.
“미국의 전술핵은 한국에 1958년 들어왔다가 1991년 철수됐다.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핵을 갖지 않겠다고 함께 선언했지만 이미 북한은 불법적인 핵을 갖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조건부로 배치하자는 식으로 딜을 해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 득 될 게 있나.
“미국의 핵심 전략인 ‘중국 압박용’으로 이보다 좋은 카드는 없다.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한다면 미국에도 이득이 있다.”
-북·미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한국을 패싱하면서 우리가 개입을 요구하면 ‘방위비를 올려 달라’고 압박할 수 있다. 이를 포함해 주한미군 감축이나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한·미동맹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향후 대미 외교는 어떻게 진행돼야 하나.
“한·미동맹 강화가 최우선 원칙이어야 한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쓸 텐데, ‘우리는 혈맹이니 절대 멀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계속 인지시켜야 한다.”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26년간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한 대북 전문가다. 2012년까지 대북 협상, 심리전을 등을 주로 담당했다. 북핵 6자회담 대표로 8차례 방북했고, 노무현정부 당시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 초안을 작성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