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38) 고향 완도에서부터 해외까지… 팬들 사랑은 언제나 큰 힘

입력 2025-01-23 03:04
최경주 장로가 2017년 경남 김해 정산CC에서 열린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1라운드 12번홀에서 어프로치샷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해외 교민 팬들의 사랑은 눈물겹다. 이들의 사랑은 2012년 출간한 자서전 ‘코리아 탱크, 최경주’에도 담을 정도로 큰 힘이 됐다.

2008년 소니 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미국 언론에 내 아버지로 잘못 소개되기도 했던 케빈 정 하와이한인골프협회 회장님은 PGA투어 진출 이후 처음 만난 교민 팬이다. 2000년 PGA 투어 데뷔 첫 경기인 소니 오픈에 응원차 찾아왔다가 그 뒤로 성적이 좋든 나쁘든 변함없는 지원을 해주셨다. 첫째 호준이의 분윳값까지 걱정해주신 감사한 분이다.

“내가 빨간불에 걸려 멈춘 날은 최 프로 성적이 신통치 않더라고. 그래서 신호 대기하고 있다가 파란불이 켜지기가 무섭게 달리기 시작해서 대회장까지 신호등 4개를 거쳤는데 하나도 안 걸리고 도착했어. 오늘은 분명히 잘 될 거야.”

그분은 실제로 우승이 확정되자 나를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추셨다. 정 회장님은 평소에 “내가 최 프로처럼만 살았으면 후회할 일이 없었을 텐데…”라는 말씀도 자주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우승할 때마다 레스토랑을 하나씩 내겠다고 하셨다. 특히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PGA 투어 8승을 거두고 바로 그다음 주 월요일 기다렸다는 듯이 8번째 레스토랑을 오픈했는데, 알고 보니 오픈 준비를 다 해 놓고 내가 우승하기만을 기다리셨다고 한다.

“최 프로, 나 힘들어. 이제 우승 그만해.” “저는 10승은 채울랍니다. 2개 더 준비하는 게 좋을걸요.”

이 밖에 수많은 교민 팬들이 내 경기를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편도 4시간 이상 운전하는 불편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 경기를 보며 이국땅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떨쳐 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쪽이 뭉클해졌다.

지금 내가 있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 지켜봐 준 팬은 바로 고향 분들이다. 골프가 뭔지도 모르는 시커먼 고등학생에게 골프를 가르치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준 이들이다. 2008년 하와이에서 열린 소니 오픈 때 완도 고향 몇 분을 초대했다. 나의 골프 첫 스승, 추강래 사장님과 열일곱 최경주를 광주 골프장으로 데려다주곤 하셨던 어르신이다.

당시엔 마지막 라운드 때 늘 검은색 셔츠를 입었다. “워메, 보기만 해도 덥네. 더위 타면 힘들어야. 우리가 까만색으로 입을랑게. 니는 시원허니 흰색으로 입어라이.”

어르신들은 노란색 단체복을 벗어 버리고 모두 검은색 셔츠를 입고 나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다니셨다. 살신성인한 사랑 덕분에 소니 오픈에서 PGA 통산 일곱 번째 우승을 거뒀다. “이야, 내가 최 프로가 미국에서 우승하는 걸 보다니 살면서 가장 보람차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