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칼럼] 이재명만을 위한 트루먼 쇼, 끝낼 때도 됐다

입력 2025-01-22 00:50

尹정부 출범 후 여의도 정치는 李대표 주연의 쇼를 보는 느낌
현대사에 1인의 생존을 위해 나라 전체가 휘둘리는 건 처음
최근 여당의 지지율 역전은 李 대표에 대한 염증 신호
향후 성실한 재판 참여만이 자신을 돌아보는 출발점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혼숙려캠프’ 등 TV 관찰 예능이 대세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심리를 파고든 편성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슈돌’을 보고 있으면 걸음마쟁이 아이들이 훗날 자신들의 배변이나 목욕 장면이 방송에 노출된 사실을 접하고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 원조는 단연 1998년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트루먼 쇼(Truman show)’가 아닐까 싶다. 20년이 지난 2018년에도 국내에 재개봉할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끈 명작으로 트루먼 버뱅크의 삶이 거대한 돔 세트장에서 연출된다. 작은 섬마을에서 보험사 직원으로 살아가는 트루먼은 태어나면서부터 30년 동안 감독 크리스토프의 ‘전지적 작가 시점’에 따라 통제된다. 소꿉친구와 직장 동료, 이웃, 심지어 부모와 아내까지 모두 그를 중심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이다.

지난 연말연시 어지러운 탄핵 정국 와중에 TV 영화 채널에서 다시 접한 트루먼 쇼는 이전과는 결이 다른 여운을 남긴다. 영화를 보며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8개월 동안 진행된 대한민국 여의도 정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위한 관찰 예능을 방불케 한다는 생각이 스쳐 간다. 차이점이 있다면 트루먼은 자신을 쇼의 주인공으로 전혀 인지하지 못하지만, 이재명은 직접 주인공으로 나서 직접 메가폰까지 잡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구속되자마자 6대 은행장 간담회까지 소집하고 나선 것은 벌써 대권이라도 쥔 듯한 제왕적 행보로밖에 달리 해석이 안 된다. 엊그제까지 여당과 정부를 겨냥한 압박 정치로 혼란에 빠진 경제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행동하더니, 돌연 민생 운운하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민주당이 한술 더 떠 수권정당을 표방한다며 내놓은 지역화폐법 개정안 등 10대 민생과제는 이 대표의 조기 대선을 겨냥한 ‘돈 풀기’ 공약이란 의심을 받고 있다.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고 그동안의 정책들이 실효성 없음이 입증됐음에도 25만원씩 지역화폐를 지급하겠다는 것인데 민의와도 상관없는 이 대표 추대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도지사 출신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게 국민 혈세로 인심 쓰는 거밖에 없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살다 보면 배우자가 법인카드를 유용할 수도 있고, 비리 사건에 연루된 주변인들이 잇따라 자살할 수도 있고, 측근이 부동산 비리나 대북송금 같은 사건으로 구속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영화 같은 일들이 유독 이 대표 주위에서 벌어지고 제1야당은 국회를 그를 위한 방탄용 로펌처럼 운용해 온 걸 생각할 때면 소름이 돋는다. 거대 야당은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등 그의 혐의를 수사하는 검사 탄핵을 서슴지 않았고 의도됐든 아니든 법원은 그가 ‘제1 야당 대표’라는 이유로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비해 이 대표를 겨냥해 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에 대해선 수사권 없는 공수처가 관할권 없는 법원에서 체포 영장을 발부받고, 법원은 ‘증거인멸 염려’라는 이유 하나로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마치 영화 속 크리스토프 감독이 트루먼 쇼가 쇼임을 감추기 위해 트루먼 아버지를 바다에 익사시키고 첫사랑 실비아를 전격 하차시키는 등 무슨 일이든 감행하는 것과 흡사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 사람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입법·사법·행정부 전체가 휘둘리는 사례가 있었던가.

감독 크리스토프는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세트장은 추잡하고 속임수가 가득한 현실 사회로부터 트루먼을 보호하는 천국이라고 호소한다. 이는 시청률을 높이려는 감독의 집착일 뿐이다. 민주당 구성원들도 이 대표가 이끌 대한민국이 지상낙원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건 아닌가.

트루먼이 결국 무대를 떠나자 경찰관 두 명이 리모컨을 조작하며 “다른 볼 거 없나?”, “채널 편성표 어딨어?”라고 나누는 대화는 대중심리의 냉혹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이 구속됐음에도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에서 추월한 것은, 대한민국 관객들 역시 이제는 이 대표 주연 쇼에 염증을 느낀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트루먼이 진짜 자신 즉 ‘True man’을 찾아 현실로 돌아갔듯 이 대표도 진정한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됐다. 윤 대통령에 대한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만 촉구할 게 아니라 자신이 피의자로 있는 각종 형사 재판에 성실히 임하는 게 출발이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