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시위가 아니라, 법정이다”

입력 2025-01-22 00:32

지난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 앞에 모인 시위대가 유리창을 깨고 청사 내부로 침입해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다닐 때, 기자는 수년 전 윤 대통령이 들려준 말을 떠올렸다. 검찰총장이던 그는 “이제 정의라는 건 법정에서 이뤄지고 판결들이 나와야 확산되는 것이지, 광화문에 나가 깃발 들고 시위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각자가 법적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진짜 민주화”라며 “결국 법치주의가 확대되고 형사법이 제대로 집행될 때 가능하다”고 했다.

예언 같은 ‘시위가 아닌 법정’ 발언은 국회의 ‘검수완박’에 저항하던 맥락에서 나왔었다. 광장에서의 민주화 노력은 군부독재의 종식으로 이어졌고, 앞으로 중요한 건 권력자의 특권과 치외법권을 지우는 반부패 노력이라 했다. 묘하게 민주화운동 세대를 과거로 돌리고 권력형 비리 수사를 현재진행형의 기여로 놓으면서, 그는 많은 자백을 받았던 2003년 한나라당 대선자금 수사를 예로 들었다. 윤 대통령은 “보수든 진보든 검찰을 욕하지만 그 수사로 기업과 정당이 공공연히 정치자금을 주고받는 관행은 없어졌다”며 “그게 시위로 되는 일이겠느냐”고 되물었다.

검찰이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윤 대통령이 말했다면 이제 덮어놓고 코웃음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다만 그때 그는 법원에의 설득, 판결로 완성되는 정의를 함께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위가 중요하지 않다며 “내가 서울중앙지검장이고 판사가 5년차 형사단독이라 해도 설득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고 했다. 구속영장 청구서마다 수십쪽 의견서를 다는 정성, 시간 쪼개 법정에 직접 나가던 노력을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판결을 통해 ‘센 사람’의 반칙이 입증돼야 사회 전체에 “우리는 더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신호를 준다는 말이었다.

법치로서의 민주화와 치외법권의 타파를 말하던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된 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에겐 치외법권 지대여야 할 관저에 수사인력이 들어서자 휴대전화로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는 담화를 촬영했다. 현재진행형의 민주화 노력이라던 수사와 법치가 일순 다 무너졌다 말한다면, 불과 수년 새 무엇이 변했기 때문일까. 수사기관과 발부 법원을 문제시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피의자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든 법조계가 돌연 이상해졌다는 주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아닌 대통령의 말이더라도 5년차 형사단독 판사를 설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깃발 들고 시위해서 될 일이냐”던 대통령은 이제 법정보다 광장을 눈여겨본다. 비상계엄은 통치행위이며 사법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법관보다 시위대 틈에서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측은 계엄이 헌정 수호의 결단이었으며 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한다. 대통령 본인이 곧 법이라서 그 통치가 법치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어쩐지 깃발 들고 시위하는 모습으로만 보인다. 법정에서의 설득력이나 승기는 아직 감지되지 않는다.

‘시위가 아닌 법정’을 강조하던 이의 지지자들은 ‘법정이 아닌 시위’를 선택했다. ‘진짜 민주화’가 비상계엄으로 흐를 때 모든 것이 반대로 뒤집혔다. 법치니 정의니 훌륭한 말들의 뜻풀이도 이젠 제각각이지만 대통령이 몸소 그래 왔듯 반칙만은 반드시 잡히게 돼 있다. 윤 대통령은 흥분한 이들이 법원을 습격했다는 소식에 “억울하고 분노하는 심정은 이해한다”며 “평화적으로 해 달라”고 밝혔다.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지난해 11월 24일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차를 마시며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반대로 말했어야 좀 더 말이 됐을 것이다.

이경원 정치부 차장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