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보이지 않는 감옥, 확증편향

입력 2025-01-22 00:34

SNS를 하다가 자주 뜨는 동영상과 글이 평소 좋아하거나 관심 두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과 연관된 내용을 보여주고 내가 좋아하거나 소비하는 콘텐츠를 분석해 비슷한 성향의 콘텐츠를 추천한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자신의 관심사나 성향과 일치하는 정보만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고, 어느새 나와 다른 의견은 아예 보이지 않는 필터버블에 갇힐 수 있다.

오늘날 디지털 환경은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을 더욱 강화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의견이나 신념을 가진 그룹 안에서만 소통하며 특정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보고 듣는다. 우리는 자신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선호하는 정보만을 선택하면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늘 만나던 사람들, 늘 보던 정보 매체가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에 길들여져 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한쪽으로 굳어진 시각과 관점을 갖게 된다. 정치를 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확증편향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사회 통합을 가로막으며, 심지어는 생명을 죽이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확증편향이 불러온 끔찍한 역사적 비극이다. 나치는 홀로코스트를 정당화하고 유대인을 탄압하기 위해 유대인을 악마화하는 선전을 펼쳤다. 유대인을 경제적 이익만 취하는 기생충으로 묘사하고, 국가 전복을 꿈꾸는 배후자로 선전하는가 하면 열등한 인종으로 규정했다. 유대인들의 사회 기여도와 인간성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나치의 통제 아래 철저히 무시했다. 나치의 거짓 뉴스와 선동은 반복적으로 유포됐다. 독일 국민은 유대인이 열등하고 저열한 인종이라는 확증편향을 갖게 되었고 대학살 정책에 동조하거나 침묵했다.

1950년대 미국에 몰아닥친 매카시즘 광풍도 있다. 냉전 시기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광적인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으로 이어졌다. 공산주의와 연관됐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색출하기 위해 무분별한 탄압이 이뤄졌다. 진실과 아무 상관 없이 조지프 매카시가 폭로한 사람들은 빨갱이로 낙인찍혔고, 평범한 행동마저 음모의 증거로 채택됐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져 수많은 작가와 배우가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혔고 공무원, 예술가, 학자들이 특별한 증거도 없이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아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사회는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광기에 빠졌다. 매카시즘은 확증편향이 집단 층위에서 작동할 때 민주주의와 개인의 권리가 얼마나 손쉽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확증편향은 공포, 배타적 신념과 결합할 때 더욱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공포가 이성을 누르면 인간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배타적 신념은 폭력을 정당화한다. 평범한 사람도 극단적인 행동에 동참하거나 묵인하게 된다. 나치 아래서 수많은 평범한 시민이 유대인의 학살을 방관했으며, 매카시즘 광기에 다수의 미국인이 무고한 이웃의 박해를 침묵 속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유발 하라리는 모든 정보가 여과 없이 흐르도록 내버려두면 진실이 지는 경향이 있다고 충고한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출처와 맥락을 검증하는 습관, 나와 다른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이념이나 신념도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일은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마음속 감옥에서 벗어나는 일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진정한 공존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박수밀(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