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방을 등에 메고 학교에 다니는 엄마를 본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여느 중·고등학생처럼 봄가을 소풍을 다녀왔고 시험도 치렀으며, 고대하던 겨울방학을 보내는 중이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그렇게나 재미있는지, 매일 저녁 식탁에 앉아 교과서를 공책에 옮겨 적으며 복습했고, 또 한참 동안 숙제를 했다. 특히 국어와 미술에 소질을 보였는데, 영락없이 학창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내 재능의 출처가 엄마였음이 밝혀진 날, 72색 색연필과 연필깎이를 주문하며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그녀의 장래희망이 시인이나 화가였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이제라도 엄마가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되어 기쁘면서도, 여백 없이 빼곡한 공책을 볼 때면 눈가에 애틋함이 밀려든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세요.” 어릴 적 내게 해주던 말을 거꾸로 듣고 있던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다 재밌는 일화가 떠올랐는지 유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할머니도 길 건널 때 차 조심하고 학교 잘 다녀오라고 그랬어.” 코끝이 시큰했다. 허리춤에 낡은 책보를 메고 산길을 가로질러 학교에 가는 아홉 살의 엄마, 손바닥만 한 고무신에 하얗게 내린 서리를 해진 앞치마로 닦아내는 할머니를 떠올렸다. 외할머니도 엄마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고기반찬 도시락을 싸주고 싶었겠지. 하지만 자식을 굶기지 않는 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일터로 가야 했던 현실이 모녀의 가슴에 얼마나 사무쳤을까. 내게는 너무나 쉽고 당연했던 일상, 잔소리처럼 들리던 말이 두 사람에게는 꿈속에서나 바랄 일이었을 테다.
외할머니는 아흔에 가까운 나이가 돼서야 당신 딸에게 “학교 잘 다녀와”라는 말을 건넸다. 그토록 듣고 싶었고, 해주고 싶었던 짤막한 말 한마디는 이제껏 내가 목격한 사랑 중에 가장 아름다운 형태였다. 아득한 세월과 눈물, 오랜 소망과 기다림이 담긴.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