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업계 투자 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가 막을 내렸다. 행사가 열린 지난 13~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기업인과 투자자 등 2만여명이 몰려들어 바이오 업계 트렌드를 살폈다.
올해 43회를 맞는 이번 행사에서는 글로벌 제약사의 대형 인수합병(M&A) 소식을 시작으로 비만치료제,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 헬스케어·인공지능(AI) 접목 등 최신 트렌드가 논의됐다.
또 연간 매출 100억 달러(약 13조원) 이상의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들이 2033년까지 대거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는 만큼 새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도 분주했다. JP모건에 따르면 올해 행사에서 요청된 비즈니스 미팅은 3만건에 달했고 1만2000건이 성사됐다.
일각에선 팬데믹 이후 행사 참가 인원이 점차 줄어들면서 JPMHC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행사장을 가득 메우던 인파도 일부 인기 기업 발표 때를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게 되면서 빈자리가 눈에 띄게 늘어난 모습이다.
다만 올해는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등을 앞둔 시점에 개최되면서 중요성이 더 커진 행사였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대표적 규제 산업으로, 새 정부는 보건·복지 분야의 다양한 변화들을 예고한 상태다. 제러미 멜먼 JPM 글로벌 헬스케어 투자 공동 책임자는 개막식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따라 시장 전반과 산업 내에 변동성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업계는 특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생물보안법과 기업의 의약품 독점 기간을 명시해 약가에 영향을 미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공공 의료보험 체계 개편 등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등 국내 기업들은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의 약 40%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의 정책 변화에 따라 수출 전략에 수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 현지에선 높은 의료비와 망가진 보험 체계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이 극에 달하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4일엔 미국 최대 건강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그룹(UHC)의 브라이언 톰슨 최고경영자(CEO)가 총격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험금 지급을 미루거나 거부하기로 유명한 미 보험사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 원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 사건은 JPMHC에도 영향을 미쳤다. 의료보험 회사, 약국 체인 등 11개 기업이 발표를 취소했다.
JPMHC가 열린 웨스틴 세인트 프랜시스 호텔 입구에선 피켓과 확성기를 든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의료 시스템의 불평등과 떨어지는 접근성, 고비용 구조가 미 대중의 불만을 촉발시켰다는 분석이다. 시위 참가자 케네스(71)씨는 “헬스케어 기업들이 환자보다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미국 의료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느낀다는 분노와 좌절감 메시지를 세계 의료 업계에 전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호텔 주변에는 폭발물 탐지견과 경찰이 배치됐고 철제 바리케이트가 건물을 감쌌다. 행사장 안에는 복도마다 무장한 경비 인력이 배치돼 수시로 입장표 격인 비표 목걸이를 검사하는 등 삼엄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경찰국(SFPD)은 행사 기간 인력 확보를 위해 직원들의 휴가를 금지했다. 일부 참가 기업은 사설 보안 요원을 고용해 행사장 내부를 함께 움직였다고 한다.
같은 시간 행사장 안에선 수백억 달러 규모의 ‘대형 딜’이 성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존슨앤존슨(J&J)은 조현병 치료제 ‘카플리타’를 확보하기 위해 인트라셀룰라테라피스 인수에 146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비만치료제 ‘젭바운드’ 개발사인 일라이 릴리는 항암제 개발 기업 스콜피온을 25억 달러에 인수했다. 제약 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인 비만 치료제 개발 트렌드는 위고비 출시 5년째에 접어든 올해 먹는 약으로의 제형 변경과 적응증 확장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등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킴벌리 파월 엔비디아 헬스케어 담당 부사장은 “AI는 의료진이 새로운 치료법을 더 빨리 발견하고 질병을 조기에 찾아내는 것을 돕는 도구를 통해 헬스케어 발전을 위한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글·사진 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