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와 다르면 ‘인민재판식’ 공격… 배척되는 국힘 ‘소수의견’

입력 2025-01-21 02:02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권 위원장은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와 관련해 “민주노총 앞에서는 순한 양이었던 경찰이 시민들에게는 ‘강약약강’의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병주 기자

“의원총회가 인민재판을 방불케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최근 국민의힘 분위기를 이렇게 평가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권에서 위기 돌파를 위한 전체주의적 분위기가 강조되다 보니 당내 소수의견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토로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강성 지지층 결집 흐름과 결합해 강경파는 득세하고 소수파는 입을 닫는 ‘정당 민주주의 퇴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20일 통화에서 “요즘 의총도 그렇고 당내 토론이 인민재판하듯이 변했다”며 “개별 의견을 쉽사리 제시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주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판이 가해져 합리적 이견은 자취를 감추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앞서 대표적 소수파인 김상욱 의원은 지난 13일 의총에서 “자체 내란 특검법을 발의해야 한다. 당이 계엄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원내지도부에 속한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정치를 잘못 배웠다”며 “우리는 히틀러, 김상욱은 유대인인가”라고 언성을 높였다. 정작 국민의힘은 그로부터 사흘 만인 지난 16일 ‘비상계엄 특검법’을 당론 발의키로 했다. 김 의원은 지난 8일 ‘쌍특검’(내란·김건희 특검) 법안 재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가 권성동 원내대표에게서 탈당 권유를 받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들이 ‘국민 저항권’을 내세워 저지른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 관련 대응에서도 소수의견 위축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 19일 페이스북에서 “저항권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고려할 수 있고, 법원 구속영장 심사에 적용할 말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부 여당 의원들은 김 의원 측에 ‘앉아서만 말이 많다’는 취지로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현상은 당내 강성 보수층 득세 상황과 무관치 않다. 국민의힘 의원 단체 채팅방에서는 강경파 의원들이 ‘경찰이 민주노총과 달리 우리에게만 강경하다’ ‘어떤 불법적인 판결이 나와도 수용하고 폭력을 자제해야 하느냐’는 등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메시지를 다수 공유한다고 한다. 이에 한 초선 의원은 “극단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주류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는 지난달 3일 계엄 선포 이후 소신 입장을 밝혀 온 소수파에 대해 자진 탈당·출당 등을 요구하는 글이 1000건 이상 올라와 있다. 한 중진 의원은 “말 한마디 잘못 하면 당원들의 문자 폭탄이 쏟아진다”며 “최소한 ‘이재명 일극 체제’인 야당과는 달라야 하지 않느냐”고 한탄했다.

이런 소수 배척 분위기가 여당의 대야 전략 수립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소수파 낙인을 꺼리는 의원들이 의총에서 공개 발언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의총만 해도 발언에 나선 의원 다수는 자체 특검법 발의를 반대했는데, 원내지도부가 개별 접촉한 결과 특검법 발의 찬성이 60%로 오히려 높게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최근 의총에서 공개 발언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며 “의원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해야 지도부가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