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국엔 ‘서약서’ 동맹국엔 ‘명세서’… 국제사회 초긴장

입력 2025-01-21 02:42
로이터연합뉴스

4년 만에 ‘징검다리 집권’으로 백악관에 복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계 안보 환경을 흔들고 통상·무역 장벽을 세워 국제질서의 재편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 독해진 ‘미국 우선주의’로 무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가 국제사회를 초긴장 상태에 몰아넣고 있다.

트럼프가 20일(현지시간)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한 국제 현안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을 축소하고 국익에 집중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에 따라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뤄진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CNN은 트럼프가 수일 내로 푸틴과의 통화 일정을 잡으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조만간 이뤄질 통화의 주된 목적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출구전략을 집중 논의하기 위한 정상회담 조율이다.

트럼프는 최근 인터뷰에서 “푸틴을 빨리 만나겠다”며 “오직 하나의 전략이 있고 그건 푸틴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말한 ‘하나의 전략’은 결국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 일부를 포기하고 전쟁 종식에 합의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미국과 동맹국 간 안보 지형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에 유리한 결과로 끝나면 부정적 선례를 남겨 중국의 대만 침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은 러시아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과의 정상외교를 시도할 수 있다. 트럼프도 “많은 핵무기를 가진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좋지 않은가. 나는 김정은과 매우 잘 지냈다”고 수차례 말하며 북한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일각에선 예측이 불가능하고 힘을 추종하는 트럼프의 대외 전략이 북·중·러·이란 같은 적대국들의 우발적 군사행동을 억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다만 이 전략은 동맹국에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은 모두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캐나다와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자국으로 편입하고 파나마운하를 반환받겠다고 공언할 만큼 우호국에 대해서도 강경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벼랑 끝 전략’이 방위비 협상에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2기에서 안보 환경의 변화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고율관세 부과에 따른 통상·무역 전쟁이다. 트럼프가 모든 국가에 10~20%의 보편관세를 적용하기 위해 복잡한 무역법 절차를 우회해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을 근거로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보편관세에 속도를 낼 수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관세와 더불어 불법 이민자 문제까지 맞물려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취임 전부터 불법 이민자 대규모 추방이 ‘1호 행정명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나서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의 고율관세와 불법 이민자 추방이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 전문가 7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올해 말 인플레이션 전망치의 평균이 지난해 10월 조사(2.3%)보다 오른 2.7%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