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30분부터 여기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지옥에서 잠을 자야 한다고 해도 여기 올 것이다.”
19일(현지시간) 오후 3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축하 집회가 열린 워싱턴DC ‘캐피털 원 아레나’ 경기장 앞에서 만난 타냐는 조지아주에서 왔다고 했다. 눈과 비, 우박까지 함께 내린 최악의 겨울 날씨였지만 성조기 무늬 옷과 모자를 착용한 타냐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트럼프는 역사상 가장 똑똑한 대통령이다. 국경 문제 해결과 경제 회복을 제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취임식을 하루 앞둔 이날 오후 3시부터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집회를 열었다. 검색대를 통과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수만명의 대기 줄은 수백 미터가 이어져 끝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경기장에 입장하는 속도보다 줄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른 것처럼 느껴졌다. 인파 대다수가 트럼프의 마가 구호나 ‘45·47’ 등 트럼프의 재선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적힌 모자, 옷, 기념품을 두르고 있었다. 트럼프의 애창곡 ‘Y.M.C.A’를 함께 부르거나 유명 캐럴에 트럼프 이름을 넣어 개사한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콜로라도주에서 아내와 함께 온 제프(52)는 “오전 7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 우리가 트럼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우리를 위해, 미국을 위해 싸우고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며 “트럼프가 이 나라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국경을 안전하게 하고 에너지와 상품 가격을 낮춰서 우리가 평화와 자유 속에서 살 수 있게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기 줄이 몹시 길었지만 입장을 중도 포기하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경기장 수용 인원은 2만여명이어서 대기 인파가 모두 입장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집회 참석자들은 트럼프의 공약 실현에 대한 기대가 컸다. 플로리다주에서 온 줄리 설리번(57)은 “나는 사실 트럼프의 모든 의제를 좋아한다. 앞으로 다가올 4년이 정말 기대된다”며 “트럼프에게 가장 기대하는 것은 우리를 부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다. 또 정부에선 안 되는 사람들을 내보내야 한다. 의회에도 임기 제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후 내내 눈과 비가 내렸지만 사람들은 몇 시간씩 입장을 기다렸다. 유타주에서 온 조지(70)는 “내가 미쳐서 (이 날씨에) 여기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농담하며 “나는 지금까지 대통령 취임식에 네댓 번 와 봤는데 취임식은 언제나 추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무엇보다 먼저 이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조 바이든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금 많은 문제는 바이든이 좋은 이민 정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국경을 넘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메인주에서 온 케빈(53)은 “트럼프는 나라를 구할 것이다. 그는 레거시 미디어를 사라지게 할 것이고, 이 나라에 다시 진실을 가져오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집회가 열린 워싱턴DC뿐 아니라 인근 버지니아주에서도 지하철역마다 트럼프 기념품을 몸에 두른 지지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페어팩스 카운티 비엔나역에서 만난 20대 백인 청년은 “버지니아 남부에서 아버지, 동료들과 5시간을 운전해 왔다. 나는 사실 이런 집회를 좋아하지 않지만 역사적인 행사일 것 같아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트럼프가 김정은과 친하니 오히려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 가끔은 적과도 친해질 줄 알아야 한다”며 웃었다. 이날 워싱턴DC를 가득 메운 인파는 슈퍼스타의 컴백에 열광하는 팬들처럼 보였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