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에서 폭력이란 형태보다 더 심각한 본질은 불복이었다. 법치는 그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의 판단을 구성원이 신뢰하고 승복한다는 전제 아래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설령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법이 정한 이의제기 절차를 따르는 것이 법치를 지탱하는 승복의 방식인데,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일부 지지자들은 법원 담장을 넘었다. 그들은 법률적 판단보다 정치적 잣대를 앞세우고 있었다. 자신의 정치적 의견에 반하면 사법부 결정도 배척하겠다는 의사를 폭력적으로 표출했다. 사법 불복 사태는 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그것을 초래한 책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정치권이 법원 난동마저 입맛대로 평가하며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국민의힘은 서부지법 난입 사태를 민주노총 가두시위와 비교하는 논리를 꺼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0일 “민주노총 앞에선 순한 양이던 경찰이 시민들에겐 한없이 강경하다. 법원 밖에서 잡혀간 이들까지 풀어주지 말라 했다고 한다. 민주노총 시위대였다면 진작 훈방했을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이런 비교는 법원 난동에 담긴 사법 불복과 법치 부정의 엄중한 문제를 희석하는 것이다. 권 위원장은 구속영장 발부 사유 등 법원 결정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권력 눈치만 보는 비겁한 사법부”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어떤 상황에도 폭력은 안 된다”면서 법원 난입의 행태에는 반대의 뜻을 밝혔지만, 그 본질인 불복에 대해선 오히려 난입자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이런 입장은 여당이 처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법치의 수호를 도외시한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2년 반 여야는 정치로 풀어야 할 많은 사안을 앞다퉈 법원에 가져가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를 조장했다. 비상계엄 이후에는 헌법과 법률 문구를 입맛대로 해석하며 법을 정치 공방 전면에 끌어들였다. 수사권 소재, 영장 적법성 등 온갖 것을 정쟁 대상으로 삼는 통에 사법적 판단이 당연히 가져야 할 권위를 깎아내렸다. 법원 결정이 부정당하는 상황을 초래하고도 야당은 ‘폭동’이라 규정하고, 여당은 그런 야당을 ‘마녀사냥’이라 비난하는 공방에 매몰돼 있다. 급기야 대법원이 “공정한 재판을 위한 사법부의 역할을 믿고 그 판단을 존중해 주시길 부탁한다”며 호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여야가 지금 할 일은 법치 질서와 사법 권위가 바로 서도록 사법부의 절차를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