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모의고사·수능 일주일 앞당기면
성적표 배포 빨라져 대입 준비 용이
정부·평가원·학교 함께 머리 맞댈 일
이젠 수험생 중심 행정 외면 말아야
성적표 배포 빨라져 대입 준비 용이
정부·평가원·학교 함께 머리 맞댈 일
이젠 수험생 중심 행정 외면 말아야
사교육 실태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끌거나 사교육비가 폭증했다는 통계가 나와 여론이 들끓으면 교육부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국·실장급 간부들이 학원가를 도는 현장 점검입니다. 물론 관할 교육청과 학원에 미리 협조를 구해놓고 사진 찍는 ‘쇼’입니다. ‘왜 이런 쇼를 하는가’라고 물으면 대개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우리도 난감하다. 저 위에서 뭐라도 하라니까….” ‘저 위’가 어디냐고 굳이 묻지는 않습니다. 장관실이거나 대통령실, 혹은 둘 다이니까요.
저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다만 교육부도 할 말은 있습니다. 사교육비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난제’여서 교육부 단독으로 어찌해볼 수 없다는 겁니다. 좋은 대학은 좋은 일터로 가기 위한 교두보입니다. 좋은 일터로 안내하는 학벌에는 인원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경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밀리지 않으려고 사교육을 한다는데 무슨 수로 말리냐는 논리입니다. 뾰족한 해법은 없는데 ‘무능하다’ 질타가 쏟아지니 뭐라도 하는 시늉이라도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장 실행 가능한 일조차 외면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특히 사교육컨설팅이 대입 제도의 불확실성을 파고들어 학부모 등골을 휘게 하는데, 팔짱 끼고 있다면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투성이 제도를 설계해놓은 장본인은 교육부 관료들이니까요. 사회구조적인 문제 뒤로 숨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성적표는 주고 선택으로 내몰아야
사교육컨설팅에 첫 번째 ‘대목’을 제공하는 수시 원서접수 시기의 불확실성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요(국민일보 2024년 11월 27일자 32면 사교육리포트① 참조). 9월 수능 모의평가(9모) 성적 데이터를 들고 수시 원서를 낼 대학을 결정할 수는 없는 걸까요.
지난해를 살펴보겠습니다. 9모는 9월 4일 치러져 성적표가 10월 2일 나왔습니다. 수시 원서접수는 9월 9일 시작했습니다. 9모 성적표 없이 수시 원서를 내도록 했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일입니다. 앞서 ‘사교육리포트①’에서 설명했듯 수시와 정시는 맞물려 돌아갑니다. ‘수시 납치’ 때문에 수시 원서를 내는 기준은 정시 합격 가능 대학이 돼야 합니다. 수능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 가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n수생 실력을 몰라 출제 당국도 어려운 일을 수험생에게 강요하는 것이죠.
일정을 조정해볼까요. 달력을 함께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먼저 9모를 1주 앞당겨 8월 28일 치릅니다. 고교 학사 일정을 손대야 하므로 일선 고교와 교육청들의 협조를 구해야 합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28일이나 걸린 정답 확정·채점 기간을 열흘 앞당깁니다. 이러면 9월 15일 성적표가 나옵니다.
이제 대학 차례입니다. 수시 원서를 일주일 늦춰 9월 16일부터 진행합니다. 이러면 이틀 동안 9모 성적 데이터를 갖고 수시 원서를 낼 대학을 고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만 해도 사교육컨설팅에 지갑을 벌리는 일을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사교육컨설팅의 두 번째 대목인 수능 직후 수시 대학별고사 기간에 발생하는 불확실성은 어떨까요. 방법은 비슷합니다. 수능 성적표를 줘 불확실성을 줄인 뒤 수시 대학별 고사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죠.
수능은 11월 14일 치러졌고 성적표는 12월 6일 배포됐습니다. 대학별고사는 수능 이틀 뒤인 16일부터 본격화됐습니다. 수험생들은 가채점으로 산출한 원점수로 자신의 상대적 위치인 등급과 표준점수, 백분위 점수를 파악해야 합니다. 대학별고사 응시 여부나 수시에 원서를 낸 대학들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했는지 판단하려면 꼭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대입 제도가 수험생들을 사교육컨설팅으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국민일보 12월 25일자 28면 사교육리포트② 참조).
일정을 손질해 볼까요. 먼저 수능을 일주일 당겨 11월 7일에 치릅니다. 평가원은 정답 확정 및 채점 기간을 기존 22일 걸리던 것에서 15일로 단축합니다. 이렇게 하면 성적표를 11월 22일 배포할 수 있습니다. 대학들은 대학별고사 일정을 일주일 미뤄 11월 23일부터 진행합니다. 수험생들에게 이틀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등급과 표준점수, 백분위점수를 갖고 있다면 고액 컨설팅을 받으러 달려가는 일은 줄어들 겁니다.
간단한 작업은 아닙니다. 대학들은 평가 일정이 빡빡하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수능 성적 발표를 앞당기는 일은 난관이 있습니다. 수능 성적표는 ‘문항·정답 이의신청→정답 확정→채점’을 거쳐야 합니다. 출제 오류로 의심되는 문항이 없으면 압축할 수 있지만, 출제 오류를 판정해야 하는 문항이 있다면 학회 등 자문을 거쳐야 해 다소 촉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일 뿐입니다. 수험생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면 고교와 교육청, 대학, 평가원이 머리를 맞대야 하죠. 이들의 입장을 조율할 책임은 교육부에 있습니다. 일정을 조정 시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이고, 최소화하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누가 더 많은 시간을 양보할 여력이 있는지, 수험생에게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일은 교육부 몫입니다. 교육부가 늘 강조하는 ‘수험생 중심 행정’ ‘학부모가 변화를 체감하는 행정’이란 구호가 여론 달래기용 학원가 현장 점검처럼 단지 ‘시늉’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