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작품 ‘고기(meat)’를 보자. 정육점에서 판매하는 고기 양이 아주 적다. 극심한 소비재 부족에 시달렸던 20세기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 배급 경제의 삭막한 풍경을 담았다. 그런데 생필품 부족은 역설적으로 과소비로 인해 지구 환경 위기를 초래한 현재에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어제의 미래’전이다. 슬로바키아 출신 여성 사진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36)의 사진전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그라운드서울에서 한창 열리고 있다. 어제의 미래 즉, ‘퓨트로 레트로(Futuro Retro)’는 신구(新舊)의 적절한 결합을 통해 놀라운 조화를 만들어내는 마리아 스바르보바 작품의 주목할 특징을 반영한다.
작가는 사회주의가 종식된 1989년에 태어났다. 그럼에도 사회주의의 건축물과 공공장소, 일상적인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레트로를 과거에 머물게 하지 않고 미래적으로 재해석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생필품이 과포화 상태에 빠지지 않아 지구에 훨씬 도움이 되었던 그 시절에 매료됐고, 당시 사람들이 구매하는 물건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작품에 투영한 것이다.
국민일보와 컬쳐앤아이리더스, 그라운드서울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에는 사진 작품 174점이 나왔다. 노스탤지어(Nostalgia), 퓨트로 레트로(Futuro Retro), 커플(Couple), 더 스위밍 풀(The Swimming Pool), 로스트 인 더 밸리(Lost in the Valley) 등 5개 섹션으로 나누어 2010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주요 작품들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슬로바키아의 “삭막한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는 잔혹주의 건축과 기능주의를 선호하며 색상, 공간, 구도의 대칭을 실험한다. CNN은 스바르보바의 후반 작업 과정에 대해 “몸체를 늘리고, 색을 강화하고, 비대칭 요소를 지운다”고 해석했다. 또 사진 속 인물은 “가면을 벗길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치를 포기하기로 한 듯” 금욕적이고 절제돼 있다. 작품을 보면 소품의 색상과 모델의 미니멀한 포즈를 위해 작가가 얼마나 꼼꼼하게 의상을 디자인하고 조명에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다.
특히 투명한 파스텔 색감이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 이면에는 현대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풍경이 담겨있다. 고정된 프레임 안에 갇혀있는 인물들의 경직된 행동 패턴과 무표정한 얼굴 등은 사회적 비판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작가는 인물과 공간에 초점을 맞추고 이 두 가지 요소를 조화시키고자 하였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색감을 표현하여 사진이 회화작품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한다.
작가는 니트라의 콘스탄틴 철학자 대학과 브라티슬라바의 요세파 비드루 응용 예술 학교를 나왔다. 전통적인 초상화 형식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사진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작품들은 국제적인 찬사를 받아 보그, 포브스, 가디언 등 세계 주요 신문잡지에 특집기사로 소개됐다. 3월 9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