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관련해 최근 전 미국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의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가 인상적이다. “정부는 기업처럼 운영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인 루빈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영국 런던정경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거쳐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 26년간 근무하며 공동회장을 지냈다. 미 재무장관(1995~1999) 재직 이후엔 시티그룹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장관 시절 균형 재정과 금융 규제 완화 정책을 주도한 그는 월가와 정부 고위직을 오가며 미국 경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현시점에 루빈이 우려하는 건 가족과 지인을 중심으로 꾸려진 트럼프 정부 진용 인사가 첨단기술과 효율성, 거래 등 기업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반면 행정 경험은 부족하기에 ‘기업 경영 비법만으로 국가운영을 원활히 할 수 있을지’다. 루빈의 관점에서 정부와 기업 경영은 세 가지 면에서 크게 다르다.
첫째로 정부보다 기업 경영은 단순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높은 수익성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공유한다는 면에서 상대적으로 단순하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 운영엔 항상 경쟁적인 관심사와 이해관계, 이념이 존재한다. 하나의 견해가 다른 견해보다 본질적으로 가치 있다고 확정짓기 어렵다. 둘째, 기업에선 의사결정이 최고경영자(CEO)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지만 정부는 민주적 절차와 투명성을 위해 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내각 구성원은 물론 외부 이익단체와 싱크탱크 등을 설득해야 한다. 때때로 대규모 조정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과정에 있어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셋째는 정부 공직자가 CEO보다 훨씬 강도 높은 감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정부 운영과 기업 경영 사이의 큰 차이점을 짚는 의도가 트럼프 진용의 행정 수행 능력을 섣불리 판단하고자 함이 아님을 루빈은 분명히 한다. 그 자신이 경험했듯 기업 경영 비법이 국정운영에 기여하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차이를 알고 자질을 새롭게 갖춰가는 게 필요한데 그 최선의 지름길이 ‘겸손’이라고 그는 말한다. 루빈은 “겸손하게 조언을 듣는 귀를 가져야 한다”며 지도자가 이렇게 하지 못할 때 “겸손을 강요당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겸손이라는 주제가 요즘 세상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미국 휴스턴의 스티브 루벤저 박사팀은 ‘미국 대통령들의 성격 특성’이란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미국인이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은 인물들이 한결같이 완고하면서도 외향적이며 성취·흥분을 추구하고 감정·가치 등에 개방적인 성향을 띈다는 결론을 내린다. 겸손은 어디에도 낄 자리가 없어 보이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루빈의 권면을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재무장관 임기 전 26년을 경제인으로 살았고 임기 후 26년을 다시 경제인으로 돌아간 이의 회고적 권면이라는 점을 높이 산다. 성경이 그와 같은 가르침을 이미 우리에게 줬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1:2)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과 선생에게 물어 지혜를 더한다는 이 가르침은 왕으로 한평생을 산 솔로몬이 아들을 향해 베푼 가르침이다. 왕자가 겸손히 물어 지혜로운 왕이 되면 그 지혜는 왕 자신만이 아닌 그의 백성을 위한 지혜가 된다는 걸 가르치고자 했다. 국민을 위해 겸손하게 지혜를 구하는 대통령. 어찌 미국만 그런 대통령이 필요할까. 2025년 그 복이 대한민국에 내리길 소망한다.
박성현 (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