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12·3 비상계엄이 기어이 폭력 사태로 이어졌다. 대통령 구속 소식이 전해진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에서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쇠파이프와 소화기로 문을 부수고, 판사 집무실을 침탈하고, 경찰과 언론사 취재진을 폭행했다.
2030 청년층이 주축을 이룬 이날의 극우 난동은 내란죄 피의자를 정점으로 뭉친 주류 정치권과 이들을 옹위한 아스팔트 우파의 선동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현장에 달려가 월담한 시위대를 응원한 윤상현 의원과 소위 ‘백골단’ 극우 청년들을 국회 안으로 불러들여 힘을 실어준 김민전 의원, 극우의 구루를 자처한 전광훈씨 등이다. 우리 사회의 공적 시스템이, 사법과 정치와 언론이 이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내란 우두머리 신병 처리만큼이나 공동체의 미래를 가를 중대한 과제다.
더불어 무법이 활개친 폭력의 현장이 가장 점잖은 언어로 질서를 외치는 엘리트 관료의 방관과 무책임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서부지법 폭력 사태는 그간 대통령이 기회될 때마다 “법이 무너졌다”며 공개 선동해온 체제 부정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렇다면 누가 내란 피의자에게 선동의 시간을 허락하고, 추종자에게 폭력의 공간을 열어줬는가. 그걸 가능하도록 방치한 정상 시스템 내부의 오류는 무엇인가.
지난해 12월 31일 체포영장 발부 이후 16일간의 지체. 폭력은 그 지체가 만든 공권력 공백 속에서 준비됐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무너진 무법의 틈새에서 그들은 폭력의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올렸고, 마지막 순간 법원을 향해 이걸 투척했다. 결국 최종 책임은 16일의 공백을 만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 한달반 비상계엄 선포, 해제, 탄핵소추, 체포, 구속까지 살얼음판처럼 이어진 과정을 지켜보며 가장 놀라웠던 건 한덕수·최상목 권한대행 체제로 대표되는 최상층부 엘리트 관료들의 무책임이었다. 그들의 발언을 들으며,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논리를 접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좌절감을 느꼈다. 그들의 언어는 상황을 어떻게든 헤쳐나가겠다는 개인의 생존 의지 말고는 읽어낼 만한 아무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현실 진단이나 해법과 관련해서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므로 아무 말도 아닌 말에 논리로 반박하거나 다투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해보였다. 매순간 합리, 합의, 질서를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가장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이며 무질서한 결과가 도출되도록 논의를 이끈다는 것도 이들의 언어가 갖는 공통점이다.
물리적 충돌 방지, 시민과 공무원의 안전, 차분하고 질서 있는 법 집행. 최 대행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서 반복해서 내놓은 메시지는 이런 관찰에 부합한다. 그의 문장에는 진단도, 해법도, 리더의 결단과 그 결단을 설득하는 논리도 없다. 읽어낼 수 있는 건 한 가지. ‘중립적으로 보이고 싶다’는 발화자의 의도뿐이다. 전달하는 정보값이 제로(0)로 수렴되는 이런 말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불법을 용인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최종 결정권을 쥔 엘리트 관료의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방관이 극우 폭력의 기름진 토양이 된 거다.
고작 이런 언어밖에 없는가. 1차 체포 실패 후 온 나라가 무력충돌의 위기감에 몸살을 앓던 지난 14일, 김선호 국방부 차관은 국회에 나와 체포영장 집행 저지가 군의 정당한 임무가 아니라는 점을 공언했다. 더불어 예하 부대를 향한 지침의 필요성과 책임소재까지 명확히 밝혔다. 판단, 결정, 지시, 책임자 확인. 그의 말에는 리더의 언어에 담겨야 할 모든 게 담겼다. 누군가 댓글에 ‘위로받았다’고 썼는데 나도 동감이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