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담배소송 항소심이 지난주 11차 변론까지 진행됐다. 2014년 처음 소송을 제기하고 어느새 11년이 지난 지금, 치열한 공방 속에 항소심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그동안 공단은 소송 대상자와 가족을 개별 면담하고 의무기록 등을 확보, 분석함과 동시에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흡연은 단언컨대 명백하고, 직접적이며, 가장 핵심적인 폐암의 원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직접흡연뿐만 아니라 간접흡연까지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는 등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이미 세계인의 상식이다. 흡연은 폐암의 원인을 제공하는 ‘방아쇠 인자’일 뿐만 아니라 병의 속도와 중증도에 영향을 미치는 ‘기여 인자’로도 작용한다. 다른 원인에 의해 폐암에 걸렸더라도 흡연은 암의 진행 속도와 중증도를 심화하므로 담배 회사의 책임은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사회는 흡연으로 11조4000억원(2021년 기준)이라는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감당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에서도 한 해 약 3조8000억원(2023년 기준)을 진료비로 지불한다. 우리나라 매출 규모 1위 담배 회사는 매년 5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지만 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폐해에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을 납부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비용은 흡연자가 담배를 구매할 때 지불하는 금액에 포함된 제세부담금에 의해 조성되는 것이다.
소송 과정에서 담배 회사 측은 흡연의 시작과 금연은 개인의 자유 의지로 충분히 선택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니코틴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중독성 물질이다. 담배 회사들은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이 만드는 담배의 중독성을 은폐했다. 흡연자들은 단순히 생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담배 회사들이 의도적으로 제조하고 책임을 방기한 강력한 중독성 물질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뇌 깊은 곳 중추신경 내에 니코틴 수용체가 존재하며, 이곳이 담배 중독의 중추라는 기전이 밝혀지기 전까지 일반 대중은 담배의 심각한 중독성을 알 수 없었다. 폐암이나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을 앓으면서 죽어가는 환자도 담배를 끊을 수 없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니코틴 중독 때문이다.
담배 회사들은 우리나라에서 2008년에야 흡연의 중독성 위험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외국에 비하면 매우 늦은 것이다. 흡연의 중독 위험과 그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완전히 공개하지 않은 것은 수백만명의 고통을 초래했다. 여기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흡연 관련 질병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권을 부정하는 중대한 오류가 될 것이다. 담배 회사의 논리에 따르면 강력한 중독 물질인 마약 또한 시작과 중단은 선택자의 자유 의지로 인한 것이기에 마약이라는 물질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담배 회사는 또 흡연과 폐암·후두암 발병 간 인과관계에 대한 무수한 역학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질병 예방을 목적으로 한 역학적 상관관계이므로 법적 인과관계와는 다르며, 흡연을 하지 않더라도 암이 발생되는 경우가 있기에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흡연기간이 30년 이상이면서 20갑년(하루 담배 1갑씩 20년간 피운 경우) 이상 흡연자의 소세포폐암 발생은 97.5%가 흡연 때문이다. 흡연 폐해의 인체 실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역학 연구 결과는 중요한 근거다. 게다가 공단은 의무기록 등을 분석해 직업력, 가족력, 과거력, 음주력이 없는 대상자를 분류해 제출했지만 담배 회사는 의사가 작성한 의무기록마저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공단은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사회 정의를 요구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건강권을 수호하기 위해 법원이 정의로운 결정을 내려주기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는 분명한 믿음을 주기를 바란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