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새벽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흥분한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해 집단 폭력을 휘두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정치의 병폐인 대결·혐오 정치가 사법부를 향한 폭력 행사로 이어지면서 법치주의 위기가 현실화한 모습이다. 경찰은 18일부터 이틀간 폭력 사태에 가담한 86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과 검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려 현장 시위자는 물론 교사자와 선동자도 찾아내 처벌할 방침이다.
지난 18일 오후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선 일부 시위대가 월담을 시도했다. 격렬해진 시위대는 19일 오전 3시쯤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폭도로 돌변했다. 시위대 수백명이 “판사를 찾아라”며 경찰 저지선을 뚫고 법원 내부로 난입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을 폭행하고 진압 방패와 경광봉 등을 빼앗아 법원 유리창과 기물을 파손했다.
경찰은 이틀간 벌어진 서부지법 폭력 사태로 총 86명을 체포해 18개 경찰서에서 분산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향후 채증 결과에 따라 체포 인원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경찰은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서부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신변 보호도 착수했다.
경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불법 행위자 전원을 구속 수사할 방침이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전국 지휘부 긴급회의를 열고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도 서울서부지검에 검사 9명 규모의 전담팀을 구성했다.
이 직무대행은 “배후를 충분히 수사하겠다”고 밝혀 이번 폭력 사태를 선동했다는 의혹을 받는 극우 유튜버 수사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날 현장을 방문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TV로 본 것보다 10배, 20배 더 참혹한 현장이었다”며 “판사가 신변 위협 없이 재판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어야만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번 사태의 상황을 공유하고 재발 방지 등을 논의하기 위해 20일 긴급 대법관회의를 소집했다.
이번 사태는 양극화된 정치가 극단적 폭력 사태로 이어졌던 2019년 ‘태극기 부대’의 국회의사당 난입, 2021년 미국 의회 폭동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9년 12월 16일 ‘공수처법·선거법 저지 규탄대회’ 참석자 수천명이 국회 정문을 뚫고 경찰과 충돌했다. 미국에선 2021년 1월 6일 대선 결과에 불복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해 시위대 4명과 경찰관 1명이 숨졌고, 최소 700여명이 체포됐다.
서부지법에서 폭력을 휘두른 사람들은 무거운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수공무방해치상죄가 적용되면 3년 이상의 징역형, 소요죄 혐의가 인정될 경우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적용될 수 있다.
신재희 양한주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