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일부 지지자들이 19일 서울서부지법에서 벌인 집단 폭력사태는 한국 정치가 그간 사법 체계의 신뢰성을 무너뜨려 온 결과물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윤 대통령 체포·구속 과정만 봐도 여야 정치권은 사법기관의 판단을 당리당략 틀에 맞춰 해석하며 ‘사법의 정쟁화’에 몰두했고, 그 결과가 법원 청사 난입으로 86명이 현행범 체포되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 저하는 향후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 차기 대선 등 주요 사안마다 ‘집단적 불복’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일 통화에서 “군인들은 국회에 진입했고, 극우 세력은 법원에서 난동을 부렸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말 그대로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 역시 “정치 양극화가 만들어낸 폭력적 괴물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극우의 행태가 무엇인지를 국민 앞에 생생하게 보여준 정치폭력 사태”라며 “이걸 정리하지 않고는 앞으로 보수는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번 폭력사태는 부정선거를 의심하는 세력이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인 법원에 대해 직접적인 공격에 나섰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가 크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와 판결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최후 수단”이라며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더는 선거 결과나 판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번 선을 넘어버렸기 때문에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과 불복, 나아가서는 대선 불복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우상호 전 의원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이 이후 선거에서 패한다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협하는 이런 행태에 대해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증오 정치’ ‘적대 정치’가 근본적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조 교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고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정치가 존재하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갈등을 더욱 키웠다”며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정당화와 부정선거론이 왜 계속 퍼지는지 여야를 떠나 정치권 모두가 제대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전인수식으로 사법부를 비판하면서도 결국 갈등 조정 없이 고소·고발전에만 집착하는 정치의 사법화도 문제로 지목됐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야 모두 법원에서 불리한 판단이나 결정이 나올 때마다 유사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근본적으로 진영 갈등이 극단화되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강성 지지층 결집의 부작용이 크다”고 말했다.
김판 송경모 이동환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