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질환 감소· 콩팥 보호 불구
심부전과 신부전 치료만 고려해
비당뇨인에 무분별 사용땐 위험
일부 환자 '살 빼는 약' 처방 요구도
탈수·과도한 체중 감소 등 부작용
노인환자는 특히 합병증 조심해야
요독증 등 치료땐 일시중단 권고
심부전과 신부전 치료만 고려해
비당뇨인에 무분별 사용땐 위험
일부 환자 '살 빼는 약' 처방 요구도
탈수·과도한 체중 감소 등 부작용
노인환자는 특히 합병증 조심해야
요독증 등 치료땐 일시중단 권고
최근 국내 도입된 위고비 등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계열 당뇨병·비만 치료제의 오남용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이 약은 원래 2형 당뇨병약으로 개발됐지만 체중 감소 효과가 입증돼 '살 빼는 약'으로 더 주목받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SGLT-2 억제제'라는 2형 당뇨병 치료제 역시 심혈관질환 감소 및 콩팥 보호 효과가 확인돼 해당 질환 치료용으로 추가 허가를 받았다. 당뇨병을 다루는 내분비내과 외에 순환기내과(심장내과)와 신장내과에서 만성 심부전, 신부전 환자에게도 최근 처방이 증가하는 추세다.
문제는 심부전과 신부전 치료만을 고려한 SGLT-2 억제제를 비당뇨인이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탈수와 당뇨병성 케톤산증, 생식기 감염 및 회음부 괴저(궤양), 과도한 체중 감소·근감소증 등 심각한 합병증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부작용으로 내분비내과나 응급실을 찾는 환자 사례가 늘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SGLT-2 억제제의 신중한 처방과 환자의 안전 사용을 촉구하고 나섰다. 학회는 “특히 노인 환자에게 SGLT-2 억제제를 처방할 때 보다 주의 깊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이 약제 또한 위고비처럼 체중 감소 효과를 보여 미용 목적으로 오남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식기 감염, 회음부 괴저 부작용
SGLT-2 억제제는 몸속 포도당과 수분 배출을 촉진해 혈당을 낮추는 기전의 약이다. 콩팥의 세뇨관에는 포도당 수송체인 SGLT-2가 존재한다. 이곳에서 여과된 포도당의 90% 이상이 재흡수돼 혈류로 들어가게 되는데, SGLT-2 억제제는 이런 포도당의 재흡수를 차단하고 소변으로 배출시켜 혈당 상승을 막는다.
국내 2형 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 DPP4 억제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처방되는 약제다. 다파글리플로진과 엠파글리플로진이 대표적이다. 해당 성분으로 만든 국내외 제약사의 오리지널 약과 복제약도 다수 나와 있다.
당뇨병학회 총무이사인 이용호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20일 “심부전이나 만성 콩팥질환에도 좋은 약이지만, SGLT-2 억제제를 사용하기 어렵거나 부작용이 예상되는 환자들에게도 약효만 믿고 처방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회에 따르면 SGLT-2 억제제 치료는 생식기 감염, 특히 진균(칸디다 등 곰팡이균) 감염의 위험 증가와 관련 있다. 해당 위험을 약 3~5배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과거 잦은 생식기 감염력이 있고 치료받은 적 있는 환자에게는 처방 시 회음부 위생에 대한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가벼운 감염이거나 치료에 잘 반응하는 경우에는 SGLT-2 억제제를 유지할 수 있으나 중증 감염이 있는 경우엔 일시적으로 사용 중단을 고려해야 한다. 드물지만 SGLT-2 억제제 치료가 회음부 괴저를 유발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생식기와 항문 주변에 급성 염증과 피부 변색, 궤양을 일으키고 패혈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해당 부위에 심한 통증과 피부 발진, 불편감, 가려움이 있으면 의심해야 한다.
이재혁 한양대 명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특히 고령층이 많은 요양병원에서 심부전 치료를 위해 SGLT-2 억제제를 처방하는 경우가 흔해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회는 또 요로 감염의 일종인 급성 신우신염이나 콩팥이 망가져 생기는 요독증 치료 중에는 SGLT-2 억제 약물을 일시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노쇠한 고령자, 근감소증 주의
SGLT-2 억제제는 기전 상 체내의 포도당과 수분 배출을 촉진하므로 이뇨제 복용 등 탈수 위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신중히 처방해야 한다. 약물 사용 후 충분한 수분 섭취의 필요성을 꼭 설명해 줘야 한다.
또 드물지만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진 환자(1형 당뇨병, 유병 기간이 긴 2형 당뇨병)에게 쓰면 위중한 합병증인 당뇨병성 케톤산증의 발생 위험이 있다. 음식 섭취가 어려운 상황, 과도한 음주, 급성 질환, 외상, 수술 등이 동반될 경우 케톤산증 위험이 증가하므로 이럴 땐 SGLT-2 억제제 사용을 일시 중단했다가 추후 재개해야 한다. 이재혁 교수는 “마른 체형에 인슐린 분비력이 저하된 사람이 SGLT-2 억제제를 사용하면 ‘트리거(방아쇠’)가 돼서 당뇨병성 케톤산증이 초래될 수 있다”고 했다.
SGLT-2 억제제 치료 시 약 2~3㎏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인다. 이 때문에 일선 진료 현장에선 ‘오줌으로 당을 배출해 살을 빼주는 약’으로 부르며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령의 마른 당뇨병 환자들은 이 약 사용으로 과도한 체중 감소와 근감소증을 겪을 수 있다. 근감소증이 있거나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정상 범위보다 낮은 당뇨병 환자는 SGLT-2 억제제 복용을 조심해야 한다. 의료진은 해당 약제 처방 시 근감소증이 있는지 확인하고 근육량을 유지할 운동 요법을 권장해야 한다. 또 체중 변화를 잘 감시할 필요가 있다.
이용호 교수는 “심부전이나 신부전의 경우 저체중이나 근감소증이 동반된 환자가 많고, 고령의 노쇠한 사람이 이 약제 사용 시 더 기운이 빠지고 체중 감소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정도로 악화하는 예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이 교수는 “SGLT-2 억제제는 2형 당뇨병이나 만성 심부전, 콩팥질환자에서 혈당 강하 및 뛰어난 질환 보호 효과를 입증했지만 좋은 효과만큼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익과 위해를 잘 고려해서 전문가 상의를 통해 신중히 투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