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뒤편의 초라한 계약
무조건 거액 받던 시절 지나
꾸준한 실력만이 대박 조건
무조건 거액 받던 시절 지나
꾸준한 실력만이 대박 조건
프로야구 스토브리그(비시즌 기간)의 꽃은 단연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다. FA는 규정 시즌을 채우고 모든 구단과 계약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선수를 말한다. 겨울이 되면 억 소리 나는 대형 FA 계약이 쏟아진다.
한평생 야구만 한 선수는 큰돈 벌 기회이고 구단은 손쉽게 전력을 보강할 수 있다. 프로야구 인기가 상승하며 선수들의 몸값이 치솟아 ‘거품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을야구를 목표로 하는 팀들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FA 시장이 달아올랐다. 2023년 803억1500만원, 2024년 775억5000만원이 시장에 풀렸다. 올해는 19일까지 20명의 FA 신청자 가운데 18명이 계약했고 10개 구단은 589억1000만원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올해는 100억대 계약이 1건으로 총액이 다소 줄었으나 내년에 대어급 FA가 즐비해 규모가 다시 커질 전망이다.
1982년 출범한 KBO리그에서 FA 제도가 처음 시행된 건 1999년 시즌 종료 뒤부터다. 처음에는 자격 취득기간이 10시즌이었고, 2001년 9시즌으로 줄었다. 2011년부터 대졸 선수는 8시즌을 채우면 FA 권리를 얻는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와 달리 FA 재자격을 얻으려면 다시 4시즌을 채워야 한다.
역대 1호 FA 계약선수는 투수 송진우다. 송진우는 1999년 11월 원소속구단 한화 이글스와 3년 총액 7억원에 손을 잡았다. 같은 해 해태 타이거즈(현 KIA) 이강철은 3년 총액 8억원에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하며 KBO 첫 이적 FA 역사를 썼다.
선수 평균연봉이 1억원에 미치지 못하던 시절 스타선수들의 대형 계약은 야구판을 뒤흔들었다.
이후 FA 몸값이 치솟았다. 2000년 12월 김기태는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삼성으로 옮기며 4년 18억원을 받아 처음으로 10억원대를 돌파했다. 현대 유니콘스 출신 심정수는 삼성과 2005년 4년 최대 60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잠잠하던 FA 시장은 2013년 말 강민호가 롯데 자이언츠에 잔류하면서 4년 75억원을 받아 또 한번 커졌다.
마침내 FA 100억원 시대가 도래했다. 2016년 시즌 뒤 삼성에서 KIA로 옮긴 최형우는 4년 총액 100억원을 받았다. 이후 LG 김현수, 롯데 이대호, KIA 나성범, NC 박민우가 100억원 이상 계약서에 사인했다. 웬만한 스타선수는 자신의 몸값을 ‘4년 100억원 이상’으로 책정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FA 총액 1위는 SSG 랜더스 최정이다. 세 번의 FA 계약으로 302억원을 받았다. 최정은 올해 스토브리그에서 원소속구단인 SSG와 4년 110억원에 잔류 계약을 맺었다. 첫 FA 계약인 2014년 11월 당시 FA 최고액인 4년 86억원에 SK 와이번스(현 SSG)와 잔류 계약을 맺었고 2018년 12월엔 SK와 6년 최대 106억원에 또 한번 FA 계약했다.
총액 기준 최고액 2위는 두산 베어스 양의지다. 세 번의 FA로 277억원을 벌었다. 양의지는 단일 계약으론 가장 큰 규모의 주인공이다. 2022년 11월 두산 베어스와 손잡으며 4+2년 최대 152억원을 받기로 했다.
FA가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대박을 기대했으나 초라한 계약서를 받아든 경우도 많다. 올해 내야수 하주석은 1년 최대 1억10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원소속 팀 한화에 남았다. 110억원을 받은 최정과 100배 차이가 난다. FA 선언만 하면 거액을 챙기던 때와 분위기가 달라졌다.
FA 시장도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각 구단은 선수에 따라 지갑을 열 선수와 닫을 선수를 구분하고 있다. FA를 앞둔 마지막 시즌에 반짝 활약한다고 해서 대박 계약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름값 보고 데려온 선수가 부진하면 대번에 ‘먹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선수생활 동안 두세 번 찾아올 FA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꾸준한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성적이 FA 대박의 첫 번째 조건이다.
김민영 문화체육부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