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36) PGA 높은 벽에 눈물… 말씀 통해 극복하고 ‘톱10 진입’

입력 2025-01-21 03:06
최경주 장로가 2016년 경기도 용인 88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파이널라운드 18번홀에서 갤러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2000년 미국 진출 첫해에 만난 첫 매니저는 미국인이었다. 매니지먼트를 맡은 IMG에서 현지 사정에 훤한 미국인을 배정해 준 것이다. 하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더구나 전담도 아니고 선수 여러명을 동시에 관리하는 시스템이라서 무엇 하나 부탁하기가 힘들었다.

3개월 단위로 일정이 잡히다 보니, 매니저가 팩스로 대회 일정과 대회장 안내 등을 기록한 서류를 보내줬다.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한 문장씩 해석했다. 이어 대회장 인근 공항까지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지도를 펴 대회장까지 가는 길을 찾았다. “이 길로 가다가 여기서 빠져 나와서 이렇게 가면 되겠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있지만 당시엔 종이 지도 한 장에 의지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대회장에 도착했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이, 아임 케이제이 초이(Hi, I’m KJ Choi).” “후(Who)?” “프롬 차이나(From China)?” 용기 내 인사를 해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동료들이 야속했다. 선수뿐만 아니라 경기 위원도 보이지 않게 차별했다. 나한테는 걸핏하면 경고 카드를 내밀고 미국 선수는 그냥 넘어갔다. 항의하고 싶어도 말이 안 되니 너무 답답했다. 혼자 있을 때라도 좀 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돈이 궁했기 때문에 매니저에게 늘 1박에 70달러 이하의 숙소 예약을 부탁했다.

2000년 8월 어느 날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렸다. PGA 투어 입성 후 치른 첫 대회 ‘소니 오픈’부터 연달아 세 대회에서 컷 탈락을 한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네 번째 대회인 ‘투산 오픈’에서 처음으로 3라운드 진출하고, 2001년 3월 초 ‘도랄라이더 오픈’에서 최고 성적인 공동 21위를 기록한 다음엔 큰 변화가 찾아올 줄 알았다. 이대로 탄력을 받으면 금방이라도 랭킹 100위 안에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PGA의 벽은 높았다. “내가 왜 미국에 와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벌어 놓은 것도 있는데 그만 돌아갈까.” “여보, 그러지 말고 우리 조금만 더 해 봐요. 곧 잘 될 거예요.” 뭔가 해 보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풀리지 않는 상황을 아내만큼은 이해해줬다. 다음 날 아내가 녹음테이프 5개를 주며 들어보라고 했다. ‘고구마 전도왕’으로 유명한 김기동 집사의 간증 테이프였다. 세 번째 테이프를 듣던 중 성경 구절을 읽어 주는 부분에서 마음과 영혼에 울림이 있었다.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이었다. “그래. 두려워하지 말자.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말씀을 통해 힘을 얻고 같은 해 9월 ‘에어캐나다 챔피언십’에서 공동 8위에 올랐다. 대한민국 남자 프로 골퍼에게 미국 진출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믿었던 시절에 톱10 진입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