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신학대학원대 21세기교회연구소에서 지난 2022년 ‘3040세대의 신앙생활 탐구’란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040세대가 취업과 사회생활, 가사 노동 및 육아, 결혼 문제 등에 피로감을 느껴 교회 출석을 꺼린다”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현대 사회가 여러 변화를 겪는 가운데 교회는 비교적 전통적 사고방식을 고수해 왔습니다. 교회가 구성원에 대한 이해에 있어 근본적 전환을 이뤄야 할 이유입니다. 이를 위해 본문 속 슬로브핫 가문의 다섯 자녀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모압 평지에서 지파별 인원을 계수하고 그 인원수대로 땅을 분배했습니다. 이때 슬로브핫의 딸들은 기존 관습대로 아버지 몫의 기업을 받지 못합니다. 이에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에게 호소하고 마침내 므낫세 가문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이야기입니다. 흥미로운 건 므낫세 족속 5만2700명 중 족보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불과 13명인데 이 중 5명이 슬로브핫의 딸들이라는 점입니다.(민 26:29~34)
슬로브핫의 딸들이 기업을 받은 게 왜 중요할까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모두를 위한 것’임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족보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신분증이자 땅에 있는 기업에 대한 권리증이며 향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약속 증서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 시민권이 혈통이 아닌 믿음의 계보를 따라 얻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초대교회는 세례를 받은 후 “그리스도 안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가 다 하나이니라”(갈 3:28)고 고백했습니다. 가부장적 고대 로마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평등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장)란 말씀과 연결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속한 므낫세 지파는 다른 지파보다 인구는 적지만 월등하게 많은 땅을 소유했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대표적 인물에는 장자 마길이 있습니다. 그는 용맹으로 이름을 떨친 군인입니다. 강인한 성격을 가진 이들을 상대로 슬로브핫의 딸들이 아버지 기업을 되돌려 받기는 결코 순탄치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슬로브핫의 재산을 위탁받기로 예정된 이들은 모세의 최종 판결 이후에도 여호수아에게 찾아가 슬로브핫의 딸들이 다른 지파 사람과 혼인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힘겨운 싸움을 끝까지 이어간 비결은 무엇일까요. 슬로브핫의 딸들이 아버지의 공로를 인정해달라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담대한 성품을 가졌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 함께 마음과 힘을 모았기에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후대에 매우 중요한 선례가 됩니다. 훗날 이스라엘의 상속법이 ‘아들이 없는 경우 딸이 아버지 재산을 물려받는다’고 변경됐기 때문입니다. 이 선례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향한 중요한 발걸음이 됐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구성원이 평등한 기회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좋은 선례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건강한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온전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김은하 부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김은하 목사는 경기도 파주 거룩한빛광성교회 부목사이자 파송 선교사로서 은혜의빛광성교회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강남대와 장로회신학대에서 객원교수로도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