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유구하게 많은 예술과 철학의 주제였다. 현실과 꿈의 구별 없음을 피력한 장자와 꿈을 통해 무의식을 탐구하고자 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과 현실을 이어 붙이려 했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까지 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지와 호기심의 대상이자 현실을 이해하는 또 다른 틀을 제공하는 원천이었다. 꿈에서는 재구성된 또 다른 현실을 경험하므로, 우리는 매일 두 층위의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삶과 꿈속에서의 시간은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꿈은 불연속적이다. 지나간 꿈을 돌이켜 보면 장면은 선명하지만 소리나 냄새 등은 전혀 떠오르지 않기도 한다.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꿈이 철저히 시각적 활동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의 저서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에 따르면 우리가 꿈을 꾸는 이유는 시각 피질이 꿈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감각 기관들은 뇌의 한정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데, 시각은 어둠 속에서 활동을 멈추기에 밤 동안 자신의 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각 피질이 이웃 감각들에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나름의 방식이 바로 꿈이다. 밤이 찾아왔을 때 촉각, 청각, 미각, 후각 등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지만 오로지 시각만이 활동의 연속성을 차단당하기 때문이다.
꿈은 정말로 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같은 책에 따르면 시각장애인들은 다른 감각을 시각적 감각으로 대체하는 꿈을 꾼다. 영화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영화의 러닝타임이 보통 90분 내외인 이유는 우리가 꿈을 꾸는 동안인 램 수면 시간의 길이가 그와 같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인들에게 꿈은 특히 중요하다. 예지몽을 통해 미래를 본다고 믿고, 태몽을 통해 탄생을 본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느냐’는 곧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상상하고 인식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지난밤의 꿈을 돌이켜보면 내가 보고 기억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꿈이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김선오 시인